[위클리오늘=김인환 기자] 미용실 10만여 개, 치킨집 9만여 개, 커피전문점 5만여 개, 편의점 4만여 개. 지난해 기준 창업 대비 폐업률 89%, 5년 내 생존율 20%. 그야말로 피터지는 자영업계 실상이다.

전체 자영업자는 올 상반기 기준 570만 명을 넘었다. 우리나라 노동자 수에 근접한 숫자다. 이는 미국·일본 보다 인구대비 두 배 이상 높은 수치다. 어느새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지만 마땅한 직업을 찾기 힘든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그런데 최근 우울한 소식이 계속 들려왔다. 삼성, LG 등 대기업 구조조정 소식이다.

굴지의 기업도 피하지 못한 구조조정의 칼바람은 전자업계 뿐 아니라 조선, 자동차에 이어 금융권까지 휘몰아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 규모가 수만 명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난 8월 고용률이 역대 최고치를 나타냈다는 정부 발표 이면의 어두운 그림자다.

항상 그랬듯 퇴직자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별로 없다. 역시 치킨집 아니면 커피숍, 편의점일 것이다.

얼마 전 편의점 업계 선두를 다투는 GS25가 우리은행과 업무협약을 맺고 퇴직자 수천 명을 대상으로 편의점 창업 지원에 나선다는 보도가 있었다. 설명회까지 동원된 이 행사에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모이기도 했다.

업계는 대부분 이를 긍정적으로 바라본 듯하다. 퇴직 후 인생설계를 돕는 취지에 과연 누가 돌을 던지겠는가.

하지만 기자의 생각은 다르다. 이들 대부분은 ‘호갱’으로 전락할 확률이 매우 높아서다.

국내 편의점 수는 인구대비 일본의 두 배가 넘는다. 여기에 한국 특유의 업종인 소규모 슈퍼, 이른바 ‘구멍가게’ 수까지 합하면 그 비율은 거의 세배에 달한다.

한마디로 신규 편의점 입지를 찾기란 신도시 아파트 상가를 제외하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편의점 본사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다. GS25 관계자는 “일본 편의점은 평수도 넓은 데다 취급 품목도 다양하고 먹거리도 풍부해 우리나라에 비해 점포 매출이 훨씬 높다”며 “우리나라는 아직 발전의 여지가 많다”고 항변했다.

일견 맞는 말이다. 일본은 소형 슈퍼나 빵집 등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충분히 그렇게 말할 수 있다. GS25 관계자도 그 부분에 관해선 “인정한다”며 분명한 대답을 하지 못 했다.

편의점 업계가 주장하는 발전성은 개별 점포 자체의 경쟁력 제고에 적용돼야 한다. 절대로 점포수 확장의 핑계로 쓰여서는 안 된다.

우리는 지난 10여 년 간 각 프랜차이즈가 벌인 무분별한 점포수 확장 전쟁으로 생긴 많은 부작용을 목도했다. 그것은 과열경쟁을 넘어 마치 ‘너 죽고 나 죽자’ 식의 운용 양상이었다.

이는 수익성 하락으로 이어졌고 이들의 분노는 애먼 최저임금 정책으로 향했다. 경쟁점이 생기지만 않았다면, 혹은 자신이 기존 점포 근처에 신규 오픈하지 않았다면 시급 만 원은 충분히 감내할 수준이었단 걸 생각하지 못 했을까? 

이들의 분노 표출 과정에서 프랜차이즈 본사의 부분별한 출점 정책과 자영업자 스스로 잘못된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한 자성론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리고 정부는 막대한 예산을 들여 이들을 보조하기에 이르렀다.

어디서 많이 보던 시나리오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자신의 저서 <노예의 길>을 통해 이를 "물질적 욕구에 대한 좌절을 국가권력을 통해 보상받으려는 사람들의 시도 즉, 사회주의 계획경제가 곧 스스로 노예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년이면 수많은 퇴직자가 노예의 길로 들어설 것이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며 피눈물을 흘릴 지 벌써부터 우려된다.

편의점을 비롯한 프랜차이즈 업계는 더 이상 순진한(?) 퇴직자들을 노예로 만들어선 안 된다.

정부도 하루 빨리 기형적 산업구조를 혁신해 퇴직 후에도 다양한 직업에 몸담을 수 있도록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지난해 최저시급의 가파른 상승과 관련해 정부가 한 말이 있다. “자연스럽게 자영업계가 정리될 것으로 본다.”

부디 그 발언에 독이 없길 바란다. ‘능력 없으면 접으라’는 말은 ‘일베’의 레퍼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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