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정숙 부동산전문 변호사(법도 종합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위클리오늘신문사] 약속(約束).

우리 사회는 ‘약속’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의 신뢰를 쌓아간다. 계약서로 이행의무를 약속하고, 법(法)으로 약속을 강제한다. 임대차계약도 마찬가지다.

임대차계약기간이 만료되면 집주인(임대인)은 세입자(임차인)에게 전세금을 돌려주고, 세입자는 집주인에게 부동산을 인도해야 하는 의무를 가진다. 이 당연한 의무를 말해 무엇하랴. 하지만 현실에서는 계약기간이 끝났는데도 전세금 돌려받기가 힘든 임차인들이 넘쳐난다.

최근 9.13 부동산대책으로 대출규제가 강화되면서 집주인들의 자금융통성이 어려워졌다. 때문에 임대차계약 종료 후에도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는 임차인들이 넘쳐나고 있다.

필자가 운영하는 법도 전세금 반환소송센터의 지난 10월 신규상담 건수도 전월 대비 30% 이상 급증했다. 11월도 마찬가지로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올해 5월~9월의 평균 신규상담 건수는 61건 인데 비해 10월은 103건. 11월은 114건으로 30% 이상 급증했다. 이런 통계는 세입자들이 전세금 돌려받기가 힘들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대부분 우리나라 집주인들은 현금이 없다. 집주인은 부동산 소유자일 뿐 현금의 유동성이 약한 것이 현실이다. 일반적으로 전세금은 1억원 이상인데 현금으로 보유하고 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새로운 세입자가 구해져야만 전세보증금을 내 줄 수 있는 구조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새로운 세입자가 구해지지 않으면 곧 기존 세입자에게 위험부담이 전가된다.

관행처럼 굳어진 ‘우리나라의 전세’ 특징은 집주인이 책임져야 할 것을, 세입자가 책임지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이는 잘못된 것이다. 계약만료 시점에 보증금을 주지 않는 것은 약속을 위반한 것이다. 임대차계약서에도 계약만료 시점에 보증금을 돌려주도록 되어 있고, 주택임대차보호법이나 상가임대차보호법에도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아도 좋다는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현실에서 집주인은 기존의 세입자가 새로운 세입자를 구해놓고 나서야 비로서 보증금을 받아서 나갈 수 있다고 주장하며, 이것을 당연한 원칙으로까지 여기는 경향이 있다. 오랜 기간 전세보증금 반환소송 상담을 하다보면 이런 생각을 가진 집주인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최근 이런 집주인을 만난 A씨도 필자를 찾아왔다. 그는 전세금반환소송 상담할 때 자주 듣던 이야기를 하소연처럼 늘어놓았다. 새로운 세입자가 들어와야 전세금을 돌려준다며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다는 내용이었다.

필자는 오랜 경험으로 등기부등본만 확인하면 전세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집인지 없는 집인지 대충 감을 잡는다. 등긴부등본을 확인 한 후 돌려받을 수 있겠다 싶어 변호사 이름으로 전세금 반환 내용증명서를 발송했다. 예상대로 법적대응을 하겠다는 내용증명을 받은 집주인은 언제 그랬냐는 듯 태도를 바꾸어 전세금을 돌려주었다. 전세금반환소송이 진행되면 100% 집주인이 불리함을 알기 때문이었다.

필자는 이럴 때 마다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약속은 스스로 지킬 때 가치있고 소중한 것이지 이런 식으로 으름장을 놓듯 경고를 보낸 후 그 결과로 약속이 지켜지는 현 상황은 못내 안타깝다.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는 또 있다. 임대차계약 만료 시점에는 전세금을 돌려주어야 하는 집주인의 의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세입자의 의무도 있다. 원상복구를 해 주어야 하며, 부동산을 인도해 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계약기간이 끝났음에도 이유 없이 부동산을 인도해주지 않고 계속 살고 있는 경우도 생각보다 많다. 이 역시 약속위반이다. 이런 경우는 명도소송이 진행된다.

임대차계약은 임대인과 임차인이 하는 약속이다. 계약기간이 만료될 즈음에 새로운 임대차계약을 하지 않을 계획이라면 만료시점에 임대인은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어야 하며 임차인은 부동산을 인도해 주어야 한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 임에도 현실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는다.

어쨌든 세입자는 전세금을 돌려받아야 하기에 필자는 또 씁쓸한 이야기로 글을 마무리 하려한다.

“전세금 돌려받기가 힘든 세입자들이여. 법은 그대들을 보호하고 있으니 그대들의 권리를 찾으시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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