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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무 회장이 남긴 발자취...LG 이름부터 4차산업혁명 대비 미래사업까지

기사승인 2018.05.20  20: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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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2월 22일 LG 회장 이취임식에서 구본무 신임 회장이 LG 깃발을 흔들고 있다. <사진=LG그룹>

[위클리오늘=김성현 기자]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20일 오전 별세했다. 43년 LG그룹의 후계자이자 총수로서 고인의 삶에는 수많은 업적이 있었다.

럭키금성이라는 CI(Corporate Identity)를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져 있는 브랜드 중 하나인 LG로 변경한 것부터 시작해 지주사 전환을 통한 과감한 투자, 남 몰래 의인들을 지원해왔던 ‘LG의인상’ 등 LG그룹에는 그의 흔적이 셀 수도 없이 많다.

◆ LG의 새 얼굴을 만들다

지금의 LG라는 CI는 구본무 회장으로부터 시작됐다. 1988년 구자경 명예회장은 ‘21세기를 향한 경영구상’을 발표했다. 그룹 CI변경은 해당 경영혁신 활동의 연장선상이었다.

당시 LG의 전 CI인 ‘럭키’, ‘금성’, ‘골드스타’ 등은 이미 국내 가전 산업은 물론 해외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어 내부에서는 CI 변경에 회의적인 입장이었다.

당시 부회장이었던 구본무 회장은 대내외의 반대에도 CI 변경을 추진했다. 여러 개로 나뉜 그룹 명칭과 이미지를 하나로 통합해 브랜드 인지도와 구성원간의 일체감을 높인다는 목표였다.

이후 1993년 LG는 임직원 및 국내외 고객 등 3700여명을 대상으로 의견조사를 실시해 그 결과를 바탕으로 1994년 CI 변경작업을 추진했다. 그룹 CI변경은 구본무 회장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구본무 회장은 글로벌, 미래, 젊음, 인간, 기술 등의 의미를 포용하고 ‘인간존중 경영’ 등을 형상화한 ‘미래의 얼굴’을 그룹 심벌마크로 최종 결정해 CI를 완성했다.

1995년 1월 1일 LG의 새로운 브랜드가 대내외에 공표됐다. 이후 LG의 ‘사랑해요 LG’ 광고가 국민들엑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LG의 브랜드는 더욱 확고해졌다.

1995년 1월 LG CI 선포식을 마친 뒤 당시 구자경 회장(왼쪽 세 번째)과 구본무 부회장(왼쪽 첫 번째)이LG트윈타워 표지석 제막식을 하고 있다. <사진=LG그룹>

◆ 외환위기를 넘어서다

1997년은 국내 모든 기업에게 위기였다. 당해 한국은 외환위기를 맞게 되고 100대 기업 리스트를 새로 써야 할 만큼 국내 기업들이 줄이어 도산했다.

1995년 LG그룹의 총수 자리에 앉은 구본무 회장은 총수 2년 만에 회사 자체를 잃을 위기에 처했다.

구 회장은 우선 재무구조개선 작업을 착수하고 외환위기 극복 방안으로 대규모 외자 유치와 적극적인 기업공개(IPO)를 내세웠다.

특히 외자유치의 경우는 단순히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투자금을 유치하는 차원이 아닌 글로벌 기업들과의 전략적 제휴를 맺어 시장경쟁력 강화를 도모했다.

그룹이 총 출동한 외환위기 극복 전략으로 인해 1998년 말 LG텔레콤이 영국의 BT(Brithsh Telecom)로부터 4억 달라의 외자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LG텔레콤의 성공을 시작으로 여러 계열사들이 다우케미컬, 칼텍스, 골드만삭스, 독일재건은행 등 해외 유수 기업, 금융기관들과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67억 달러라는 대규모 외자유치에 성공했다.

이를 토대로 LG생활건강, LG텔레콤 등 7개 계열사가 상장돼 외환위기 극복과 함께 지금까지도 경쟁력있는 기업으로 남아있다.

◆ 국내 최초 지주사체제

구본무 회장은 ㈜LG라는 국내 최초의 지주사를 만든 장본인이다.

구 회장은 자신의 회장 취임 8년째인 2003년 국내 대기업 최초로 지주회사체제 전환을 시작했다.

계열사간 복잡하게 얽힌 순환출자로 인해 한 기업의 어려움이 그룹 전체에 영향을 미치자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해결책을 낸 것이다.

구 회장은 1999년말부터 본격적인 지주회사체제 전환 작업에 돌입했다.

우선 계열사간 출자를 정리하고 지주회사와 자회사간의 수직적 출자구조를 만들었다. 계열사는 사업에 집중하고 전체적인 그림은 지주회사가 그리도록 한 것이다.

또 내부적으로 경영권을 두고 경쟁했던 허씨가(家)를 GS그룹과 친족인 LS그룹을 분리해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분쟁을 제거했다.

2002년 10월 구본무 회장이 전기차배터리 개발을 위해 만든 시제품을 테스트하고 있다. <사진=LG그룹>

◆ 미래를 대비하다

구본무 회장은 전자·화학·통신서비스 등에만 집중해왔던 LG그룹의 미래 먹거리 사업 개발에도 힘써왔다.

구본무 회장은 친환경 자동차 및 자율주행차 부품 등 자동차 부품 분야를 미래성장사업으로 선정하고 육성시켜왔다.

이 같은 판단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는 LG그룹이 변화에 적극 대응할 수 있도록 했다.

LG화학은 전기차배터리를, LG전자는 전기차 부품과 인포테인머트 부품, LG디스플레이는 차량용 디스플레이, LG이노텍은 차량용 모토와 센서, LG하우시스는 경량화 부품 등 그룹 내 전계열사가 적극적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신기술을 내놨다.

LG유플러스 역시 세계 최초로 LTE를 적용한 드론을 선보여 4차 산업혁명시대의 주인공으로 부상 중이다.

에너지분야에서는 태양광, 에너지저장장치(ESS), 에너지관리시스템(EMS)에 이르는 ‘토탈 에너지 솔루션’을 확보했다.

한편 구본무 회장은 사회복지활동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구 회장은 2015년 LG복지재단을 통해 ‘LG의인상’을 제정했다.

일반적으로 기업들은 사회공헌활동을 마케팅 활동에 이용하는 반면 LG의인상은 한 인터넷 커뮤니티의 제보로 세상에 알려졌다. 이는 구 회장의 사회공헌활동이 가지는 진정성을 알리는 가장 큰 마케팅이 됐다.

현재까지 국가와 사회를 위해 헌신한 소방관, 경찰, 군인 등 ‘제복 의인’부터 얼굴도 모르는 이웃을 위해 위험을 무릅쓴 크레인·굴착기 기사, 최근의 '투스카니 의인' 등과 같은 ‘시민 의인’ 등 70명이 넘는 ‘LG 의인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김성현 기자 smre3810@onel.kr

<저작권자 © 위클리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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