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실 전 여성가족부 차관

[위클리오늘] 지난 주 공무원 동기들과 점심을 했는데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퇴직 후 건강을 위해 평소 좋아하던 수영을 하려고 했는데, 오전에는 남성입장이 허용되지 않더라는 것이다.

그가 말하니 다른 사람들도 맞장구를 친다. "우리 집 근처 수영장도 그래요". 그들은 수영장 측에 무슨 이유로 남성을 제한하냐고 물었다고 한다. 여성들이 남성들과 같이 하는 것을 싫어해서 그렇다고 대답했는데 신빙성은 없어 보인다.

수영을 좋아하는 그는 어쩔 수 없이 오후에 수영을 한다. 나는 사실 오전 남성 입장금지를 알고 있었다. 내가 놀란 것은 내가 다니는 수영장만 그런 줄 알았는데, 대부분의 수영장이 그렇게 운영한다는 사실이다.

처음 수영을 시작할 때는 얼마나 오래할 수 있을까? 우려했는데 벌써 7개월이나 되었다. 남들이 보면 웃겠지만 날짜를 세면서 스스로를 기특하다고 칭찬한다.

수영을 전혀 못했던 내가 용기를 낸 것은 친구의 권유 덕분이었다. 친구도 처음에는 수영을 잘 못했지만 건강상 수영을 시작했다. 관절이 좋지 않은 중년이나 노년들에게 전신운동인 수영이 좋은 운동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혼자의 의지만으로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등록하러 간 날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아침 9시부터 12시까지는 여성전용 시간이었다. 한마디로 남성은 그 시간 대 수영장 입장금지인 셈이다. 지금까지 많은 시설을 이용해 보았지만 한정된 시간이기는 하나 특정 성의 이용을 배제하는 시설은 처음 봤다. 여성의 입장을 금지하는 유럽의 고급 명문 골프장이 있다는 이야기는 언론에서 기사로 읽었을 뿐이다.

"왜 여성전용시간이 있어?" 친구에게 물었다. "여성회원들이 이용이 많아서 그럴 거야"라는 답변을 한다. 수요공급의 원칙에서 여성회원이 그 시간에 많이 이용을 하니 여성으로 제한한 걸까? 아직 운영자 측에 이유는 물어보지 않았다.

아마 친구의 대답과 비슷할 것이다. 오픈해봤자 남성들의 이용이 저조하니 그랬을 수도 있고, 과거에 오픈했지만 이용객이 적어 그랬을 수도 있다. 언제부터 이런 조치를 했는지도 모른다. 락카는 제한돼 있기 때문에 남성락카를 사용하기 위한 경제적인 이유가 커 보인다. 굳이 변명을 해주자면 이용에서의 차별이라는 생각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분명히 짚어야 한다. 여성입장에서도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이러한 조치에는 오전 시간대에 남성들은 회사에 가고 여성들은 집에 있다는 성별 고정관념이 엿보이는 것은 나만의 지나친 비약은 아닐 것이다.

2016년 기준 58.4%로 아직은 저조하지만 여성의 경제활동참여율은 증가 추세에 있고 2015년 기준 18세 미만 맞벌이 가구비율은 48.4%가 넘었다. 여성들을 가정주부로만 한정하는 프레임에는 찬성하기 어려운 사회변화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외로 오전에 수영하는 여성회원들도 자영업을 하거나 프리랜서나 파트타이머들이 꽤 있지만, 지금은 전체를 논하는 것이니 개별 사례를 이야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남성들 입장에선 어떨까? 퇴직한 나의 공직 동기처럼 오전에 시간적 여유가 있는 남성들이나 전업주부 남성들은 오전에는 이 수영장을 이용할 수가 없다. 유명 철학자인 김형석 교수가 노년건강을 위해 60세부터 수영을 시작해서 40년간 수영을 계속해 온 이야기를 쓴 100세 일기 조선일보 칼럼을 최근에 읽었다. 아직도 일주일에 두세 번 수영을 한다고 하니 김 교수님도 이 수영장을 오전에 이용할 생각은 꿈도 꾸시지 마셔야 한다.

지금은 폐지됐지만 2008년 제정된 남녀차별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시설, 재화의 사용에 있어서 남녀차별은 명백한 법위반이다.

내가 다니는 수영장은 1988년 올림픽 이후 외부에 공개했으니 30여년이 다 되어간다. 수영장 운영기관 측에서 남녀차별이나 여성친화를 특별히 염두에 두고 운영을 하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시설물은 이윤확보도 좋지만 소외되는 이가 없는지 세심하게 살펴 모든 이용자들의 편익제고에도 관심을 두어야 한다. 그것은 공공기관의 책무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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