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오늘=오경선 기자]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1993년 금융실명제 이전에 개설한 차명계좌에서 60억원대의 잔액이 확인됐다. 이 회장은 31억원의 과징금을 물게 됐다. 2008년 삼성 특검 수사로 이 회장 차명계좌가 수면 위로 드러난지 10년 만이다.

문재인 정부가 실명제 실시 이후 개설된 차명계좌도 제재강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법 개정을 추진할 방침이어서, 1200개 설(說)이 나오는 이 회장 나머지 차명계좌에 대한 과징금이 천문학적으로 불어날 가능성도 있다.

원승연 금융감독원 자본시장 담당 부원장은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본원에서 '이건희 차명 계좌 검사 결과'를 발표했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달 19일 이건희 회장의 차명계좌에 과징금을 물리기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 지난 2일까지 2주간 삼성증권, 신한금융투자, 한국투자증권, 미래에셋대우 등 4개 증권사에 대한 특별 검사를 진행해왔다.

이들 증권사는 이 회장 차명계좌 중 금융실명제가 실시된 1993년 8월12일 이전에 계좌(27개)가 개설된 곳이다.

검사 결과 4개 증권사에 묻어둔 이 회장의 차명계좌 자산 총액은 61억8000만원이다. ▲신한금융투자 26억4000만원(13개) ▲한국투자증권 22억원(7개) ▲미래에셋증권 7억원(3개) ▲삼성증권 6억4000만원(4개)이다.

계좌에 있던 자산은 대부분 삼성 계열사 주식으로 특히 삼성전자 주식이 많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당초 이 회장 차명계좌에는 1988년 사망한 선친 고 이병철 회장에게서 물려받은 뭉칫돈이 있을 수 있다는 추정도 나왔다. 그러나 실제 금감원이 확인한 잔액은 이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검사를 담당한 김도인 금감원 부원장보는 "차명계좌 자산 61억8000만원은 1993년 8월 12일 당시 주가(삼성전자 주당 3만8600원)를 기준으로 계산한 것"이라며 "지난달 26일 삼성전자 주가(주당 236만9000만원)를 적용해 계좌내 주식을 현재 가치로 평가할 경우 2369억원 규모"라고 설명했다.

과징금 부과 대상 차명계좌 27개 중 25개는 현재 계좌 해지 등으로 폐쇄된 상태다. 나머지 계좌도 잔액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김 부원장보는 덧붙였다.

금감원은 삼성증권의 경우 다른 증권사와 달리 거래내역 자료의 일부가 존재하지 않아 세부내역까지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삼성증권에 대해서는 검사를 1주일 연장키로 했다.

이와 관련 김 부원장보는 "추가 검사로 삼성증권에 있는 이 회장의 자산 총액이 늘어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차명계좌의 자산총액이 확인된 만큼 금감원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게 됐다. 현행법상 과징금 부과액은 금융실명제 실시 당시 계좌 잔액의 50%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이 회장이 물어야 할 과징금 액수는 30억9000만원이다.

그러나 이 회장 차명계좌에 부과되는 과징금이 천정부지로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금융위원회가 이날 금융실명제 시행 이후 개설된 차명계좌에 대해서도 과징금을 매기는 방안을 담은 금융실명법 개정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개정안은 1993년 금융실명제 시행 후 개설된 계좌를 활용한 탈법목적 차명 금융거래에 대해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금융감독원 자료 등을 토대로 이건희 회장의 차명계좌는 은행 계좌 96개를 포함해 모두 1229개며 이 중 97.8%가 실명제 이후 계설된 계좌라고 주장한 바 있다.

금융실명법이 당국의 예상대로 '현실화'된다면 이 회장의 과징금 대상 계좌는 크게 늘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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