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포승줄에 묶여 호송차로 이동 중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왼쪽)과 5일 집행유예 판결을 받고 미소짓는 이재용 삼성전자부회장. <사진=뉴시스>

[위클리오늘=김성현 기자] 법원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게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같은 뇌물공여죄로 기소돼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는 비교되는 모습이다.

13일 신동빈 회장에게 징역 2년 6월을 선고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2부(부장판사 김세윤)는 이재용 부회장의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등법원 형사합의 13부(부장판사 정형식) 엇갈린 결과를 내놨다.

이재용 부회장의 항소심이 증거로 인정하지 않은 안종범 전 청와대 청책조정수석의 업무수첩은 증거로 인정하면서도 신동빈 회장의 판결에 있어서는 정황증거를 토대로 유죄를 선고했다.

이와 동시에 이재용 부회장의 항소심이 판단한 ‘이 부회장에 대한 경영승계 작업이 없었다’는 부분은 동의했다.

롯데에 대해선 현안과 정황만 갖고 유죄를 결정한 법원이 이재용 경영승계에 대해선 안종범 업무수첩을 증거로 채택하면서도 부정한 것이다.

삼성의 입장에서는 다가오는 대법원 상고심을 앞두고 타사건의 판결에서 지원사격을 받게 됐다.

항소심에 이어 최순실, 안종범, 신동빈의 1심이 경영승계가 없었다고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 이재용엔 없다는 증거, 신동빈에겐 정황으로 충분?

재판부는 롯데그룹이 K스포츠재단에 지원했다가 돌려받은 70억원 전부를 유죄로 인정했다.

뇌물죄의 경우는 수수 또는 공여한 돈을 돌려받더라도 기수범으로 처벌된다. 뇌물을 약속한 것만으로도 뇌물죄는 성립된다.

신동빈 회장은 2015년 8월 호텔롯데 상장을 발표한 후 같은 해 11월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이 재승인에 실패하자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면세점 재선정에 대한 부정한 청탁을 하고 그 대가로 K스포츠재단에 70억원을 추가지원한 혐의로 기소됐다.

2016년 6월 K스포츠재단은 검찰의 롯데그룹 경영비리 압수수색을 하루 앞두고 70억원을 돌려줬다. 

재판부는 신동빈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단독 면담을 한 2016년 3월 14일 신 회장이 박 전 대통령에게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과 관련된 '명시적 부정청탁'을 했다는 증거는 없다고 봤다.

하지만 △ 호텔롯데의 성공적인 상장으로 인해 신동빈 회장의 지배력이 강화되는 점 △ 호텔롯데에서 면세사업부가 차지하는 비중 △70억원 지원과정에서 나타난 롯데그룹 관계자들의 모습 △ 후원금 반환 경위 등을 종합해 신 회장이 박 전 대통령에게 ‘묵시적 청탁’을 한 점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박 전 대통령과 신 회장의 면담 시기에 청와대, 기획재정부, 관세청 등에서 서울 시내면세점의 추가 승인을 검토하고 있었다는 점도 유죄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

정리하자면 롯데그룹의 현안은 신동빈 회장의 경영권 확보를 위한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 재승인 한가지이고 이를 위해 신 회장이 K스포츠재단 지원을 통해 묵시적 청탁을 했다는 것이다.

객관적 물증 등 직접증거가 아닌 정황증거에 기반한 판단이다.

반면 같은 재판부는 △ 중간금융지주회사 제도 도입 △ 삼성SDS 및 제일모직의 유가증권 시장 상장 △ 삼성중공업-삼성엔지니어링 합병 △ 삼성테크윈 등 4개 비핵심 계열사 매각 △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 계획에 대한 금융위원회 승인 △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 투자유치 및 환경규제 관련 지원 △ 메르스 사태 및 삼성서울병원에 대한 제재 수위 경감 추진 등 10여개의 현안을 가진 삼성에 대해서는 명시적 청탁은 물론 묵시적 부정청탁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앞선 삼성의 현안 모두가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승계작업’이라는 포괄적 목표를 위해 순차적으로 추진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승계작업은 부정한 청탁의 대상으로서 범행 성립 여부와 관련해 중대한 의미를 가지므로 그에 대한 당사자들의 인식도 뚜렷하고 명확해야 하고, 개괄적이거나 광범위한 내용 인식만으로는 이를 인정할 수 없다”며 승계작업 자체가 없었다고 판단했다.

이 같은 판단은 이재용 부회장의 상고심에서 삼성측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항소심에 이어 '최순실-박근혜' 재판부 역시 이 부회장 뇌물사건에서 핵심문제인 '경영승계 작업' 자체가 없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경영권 승계작업이 없었다면 이재용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에게 부정한 청탁을 할 이유도 없어진다. 이재용 부회장과 변호인단은 1심에서부터 줄곧 이 같은 논리를 주장해왔다.

◆ 안종범 업무수첩 이번에도 증거인정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는 안종범 업무수첩의 증거능력을 인정하고 정황증거로 사용했다.

안종범 업무수첩은 최순실, 안종범, 신동빈 재판에서 뿐아니라 박채윤, 김종, 차은택, 장시호, 최경희, 남궁곤, 김경숙씨 등의 재판에서도 증거로 채택됐다. 이재용 부회장 1심 재판부도 역시 안종범 수첩의 증거능력을 인정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는 안종범 업무수첩에 대해 “증거물인 서면 내지 단독면담에서 대통령과 개별 면담자 사이에 수첩 기재와 같은 내용의 대화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할 ‘간접사실에 대한 정황증거’로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한다”고 판단했다.

이는 안종범 전 수석의 진술과 결합하더라도 업무수첩이 전문증거기 때문에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이재용 부회장의 항소심과 반대되는 판단이다.

전문증거는 경험자가 직접 제시하는 증거가 아닌 제3자가 간접적으로 전한 증거를 말한다.

자신의 경험을 전달한 본래증거는 법정에서 증거능력이 있는 반면, 전문증거는 전문증거법칙에 따라 원칙적으로 증거로 쓸 수 없다.

이재용 부회장의 상고심에서 가장 큰 핵심은 안종범 업무수첩이다. 안종범 업무수첩은 이재용 경영승계와 관련한 부정청탁을 입증할 사실상 유일한 증거다.

대법원이 안종범 업무수첩의 증거능력을 인정하느냐에 따라 이재용 부회장의 뇌물공여 액수도 큰 차이가 날 가능성이 높다.

앞선 항소심은 특검이 기소한 이재용 부회장의 뇌물공여 액수 중 코어스포츠 용역비 36억원과 살시도, 비타나, 라우싱 등 말을 사용한 금액(가액불상)만 뇌물로 인정해 이 부회장에게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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