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종로구 대우건설 본사. / 뉴시스

[위클리오늘=안준영 기자] 건설업계 지각변동을 몰고 올 것으로 예견되는 대우건설 매각전에서 체급이 낮은 호반건설이 승리하면서 정권 차원의 특혜 시비가 야권을 중심으로 불거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정치적 기반인 호남 기업 밀어주기라는 주장이 핵심이다. 현 정권의 모태인 노무현 정부 당시 호남 기업 금호아시아나의 대우건설 인수 건과 데자뷔(기시감)라는 말도 나오는 등 후유증이 가라앉지 않는 모습이다.

대우건설 최대주주인 KDB산업은행은 지난달 31일 이사회를 열어 대우건설 지분 매각을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호반건설을 선정했다.

호반건설이 전체 매각 대상인 대우건설 지분 50.75%(2억1100만 주) 중 40%(1억6600만 주)만 우선 사들이고, 나머지 10.75%(4500만 주)는 2년 뒤 매입하는 분할인수 방식이다. 매각가격은 약 1조6000억원(주당 7700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최근 대우건설 주가는 하락세다. 산은이 매각 공고를 낸 지난해 10월 13일 대우건설 주가는 7150원이었는데 지난달 31일 종가는 6200원이다. 1일 종가는 6020원으로 더 떨어졌다.

산은이 대우건설 지분 인수와 유상증자에 쏟아부은 돈이 3조2000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취득원가의 절반 수준으로 회사를 되파는 셈이다. 산은의 대우건설 보유 지분 장부가는 2017년 말 기준 약 1조6000억원이다. 회계처리상 손실을 반영할 필요는 없게 됐지만 1조원대의 공적 자금이 날아간다는 혈세 손실 논란은 여전하다.

호반의 대우건설 인수가 유력해지면서 대우건설은 45년 역사 동안 대우그룹 → 금호아시아나  → 산은에 이은 네 번째 주인을 맞게 될 것이 확실시된다.

◆ 금호아시아나에 먹힐때와 유사한 패턴

이번 호반건설의 대우건설 매입 수순은 12년전 금호아시아나의 그 것과 판박이라는 시각이 나온다.

우선 인수 방식 변경. 산은은 지난해 매각 공고 때 지분을 한꺼번에 판다고 했지만 돌연 풋옵션(특정 상품을 정해진 시점에 정해진 가격에 팔 수 있는 권리)이라는 조건부 매각 방식으로 선회했다.

2006년 금호아시아나의 대우건설 인수전때는 주식 매각 규모가 애초 50%+1주에서 72.1%로 늘어나면서 자금력이 있는 대기업을 노골적으로 밀어주고 있다는 뒷말이 무성했다.

선정 시점이 연기된 점도 비슷한 흐름이다.

산은은 26일 예정된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일정을 닷새뒤로 연기했다. "최종입찰제안서에 대한 매각자문사의 평가가 종료되지 않았다"는 석연찮은 이유를 달았다.

2006년에는 대우건설 매각 키를 쥔 재정경제부 산하 공적자금관리위원회가 우선협상대상자 발표 시기를 6월20일에서 이틀뒤로 미뤘다.

두 케이스 모두 업계에선 헐값 매각과 특혜 논란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의혹은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정권 연계설로 초점이 모아지는 모양새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1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산은이 작년 정관개정을 통해 졸속매각이 가능토록 한 조치나 전량매각 방침이 분할매각 방식으로 전환되는 절차와 과정이 투명하지 않은 밀실매각"이라고 추궁했다.

산은이 호반건설의 요청을 받아들여 대우건설 지분을 순차적으로 나눠서 매각하기로 한 것은 특혜 소지가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업계에서 제기된다. 산은은 대우건설의 경영정상화를 위해 호반건설 인수후 5000억원 안팎의 자금을 지원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매각 주관사인 미래에셋대우가 호반건설의 백기사로 등판한 점도 논란을 부추기는 분위기다.

산은이 담보 제공을 요구하자 미래에셋대우는 풋옵션에 대한 보증을 서기로 했다. 최승남 호반건설산업 사장, 최현만 미래에셋대우 대표이사 수석부회장, 창업주 김상열 호반건설 회장은 광주고 동문이다.

그런데 2006년때도 본 입찰을 앞두고 특혜 시비가 고개를 들었다.

매각주체인 자산관리공사(캠코)는 최종 입찰 제안서에 ▲500억원 이상의 M&A 경력 ▲건설업체 보유현황과 시공능력 등을 추가한 경영능력(비가격 요소)을 평가에 반영하기로 했다. 건설사를 소유하지 않은 경쟁 후보(유진ㆍ프라임) 입장에서는 반발할 수밖에 없다.

또한 당시 여당(열린우리당)과 정부는 대우건설, 쌍용건설처럼 정부출자기관이 30% 이상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구조조정 기업을 매각할 땐 대기업 집단의 출자를 예외적으로 허용했다. 새로운 평가항목 추가와 출자총액제한규정 완화는 누가 봐도 금호아시아나에 유리한 내용이다.

"졸속 매각"이라 주장하는 노조의 반발도 예나 지금이나 상수인 가운데 호반건설의 경영 능력도 의문시된다는 반응이 나온다.

매출 대부분이 주택사업에 의존하는 호반건설과 다각화된 공종포트폴리오를 유지하는 대우건설은 업계 13위과 3위라는 랭킹을 떠나 급이 다르다.

호반건설은 창업주 김상열 회장이 사업 전반에 직접 지시를 내리는 오너경영 체제인데 반해 대우건설은 전문경영인 체제라는 경영방식의 간극도 크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금호는 우리와 사고방식 자체가 달랐다. 합리적인 게 없었다"면서 "모든 정책 결정이 오너의 머리에서 나와야하고 오너의 입에 달려 있었다. 오너가 없으면 조직이 안돌아갔다"고 회고했다.

자신보다 덩치가 훨씬 큰 기업을 품는 것이 화근이 되는 '승자의 저주'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물론 12년 전과는 사정이 다르다는 반론도 있다.

금호아시아나는 자산관리공사 등 채권단이 가진 지분 72.1%를 6조4255억원에 인수했다. 경영권 프리미엄을 감안하더라도 시장가보다 1조원 이상 비싼 값이었다. 시세 대비 3000억원 정도 얹혀준 호반건설은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다.

자금 사정도 차이가 난다.

호반건설은 현금성 자산 비율이 높아 이번 입찰에서 금융기관의 차입보증서 없이 계열법인의 자금 증빙만으로 1조5000억원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금액의 절반을 웃도는 3조5299억원을 재무적투자자(FI)로부터 차입하고 대신 FI에 대우건설 지분 39.6%를 담보로 내놓을 정도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은 금호아시아나와는 거리가 있다.

때문에 대우건설 주변에서 우려하는 '인수후 동반부실' 가능성은 금호아시아나보다 낮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경기에 민감한 건설업의 속성, 규제 일변도의 부동산 시장의 흐름을 감안할 때 돌발변수가 대기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 여신금융사가 호반건설 모체…보수적 경영기조

호반건설의 전신은 1996년에 설립된 여신전문업체인 현대파이낸스(주)다.

매출채권 할인과 팩토링금융, 할부금융 등을 전문으로 하던 이 업체는 토목 및 건축공사업을 양수해 본격적으로 건설업에 뛰어들었다. IMF 사태로 부동산가격이 폭락하자 여러곳에 땅을 사 주택분양사업을 시작했고 본거지 광주를 벗어나 울산, 대구, 천안 등지로 사세를 확장했다.

1999년 38억원 수준이던 매출은 김대중 정부 말기인 2002년 988억원으로 뛰었고 2008년 2400억원, 2013년 1조원에 근접하는 등 수직상승했다. 2006년 사명을 호반건설로 변경했다.

전남 보성 출신으로 광주고, 조선대를 나온 것으로 알려진 김상열 회장은 2015년 금호산업 인수전에 나서면서 호남을 대표하는 기업인 반열에 올랐다.

본업이 금융인 때문인지 건설업 특유의 공격적 사업 확장보다는 안정된 자금운용으로 내실경영을 펼쳐온 것으로 파악된다.

호반건설 관계자는 "외형 목표없이 철저히 수익성을 따진다. 수익률이 기대치를 밑도는 사업은 진행안하고 기다린다"며 보수적인 경영 기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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