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세청 연말정산 간소화 서비스에서 A씨가 지난 2009년부터 가족관계가 아닌 B씨에게 개인정보 자료를 제공한다고 안내돼 있다.

[위클리오늘=오경선 기자] 한 해 1천만명이 넘는 근로자가 전년도 원천징수 세금을 조정하기 위해 이용하는 국세청 홈택스 연말정산 간소화 서비스(이하 서비스)에서 개인정보가 수년간 타인에게 무단 유출된 정황이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연말정산 자료는 금융 거래나 병원 내원 등 사적 정보가 담겼기에 사전에 자료제공 동의를 신청한 부양가족에 한해 연말정산 신청자만 조회가 가능한데도 자격없는 제3자에게 버젓이 공개되고 있다.

하지만 국세청은 당사자의 해명 요청에 느슨한 태도로 대응하면서 보안사고 문제의 심각성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직장인 A씨(56)는 올 초 지인 B씨로부터 전화를 받고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의 몇년치 소득∙세액공제자료가 국세청 서비스를 통해 노출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B씨가 자신의 연말정산을 위해 서비스를 접속해보니 지난 2012년부터 A씨가 사용한 신용카드, 직불카드 사용내역과 금액, 보험료, 의료비 등의 개인정보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화들짝 놀란 B씨를 통해 사태 파악만 했을뿐 불특정 다수에게 정보가 흘러갔는지 등 피해 규모에 대해 A씨는 가늠조차 되지 않는 상황이다.

A씨는 "소유 4개 카드의 월별 사용내역, 전체 사용금액 등 세부 정보가 몇 년째 타인에게 공개되고 있다니 어이가 없을 따름"이라며 "보험도 종류, 내역, 납입금액, 계약기간 등이 가감없이 유출됐는데 영문을 모르니 답답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병원비 내역에 적힌 상호를 추적하면 내가 어떤 진료를 받았을 지에 대한 추측도 가능해진다. 사업자번호, 의료비 지불일자, 금액까지 낱낱이 조회되는데 악의적으로 이용되지 않을까 두렵다"고 우려했다.

현재 특정인의 의료비, 교육비 납입금액 등 각종 정보는 사전에 자료 제공 동의 신청을 한 직계존속, 직계비속, 배우자, 형제자매 등 부양가족에 한해 연말정산 신청자가 서비스를 통해 열람할 수 있다.

가족 명의의 신용카드나 휴대폰, 공인인증서 등을 통한 본인 인증 절차를 거친다. 다만 부양가족이 19세 미만이면 동의절차 없이 '미성년자 조회 신청'을 한 뒤 조회가 가능하다.

A씨는 B씨와 가족 관계가 아니기에 애시당초 자료 제공 동의 신청 대상이 아니다.

그런데도 서비스상에는 2009년 1월20일부터 자료 제공이 '동의'되고 있었다. 자료 제공 범위가 '2008년부터 계속'으로 설정돼 있다.

일부 사용자에 국한됐을 수 있지만 국민의 중요 경제 활동정보를 다루는 국세청의 정보보호에 구멍이 뚫린 셈이다.

단순 전산 오류라고 생각한 A씨는 국세청에 상황을 설명했으나 "부양가족이 아니면 자료제공 동의가 불가능하다. 만약 자료가 제공되고 있으면 취소 신청을 하면 된다"는 무성의만 답변만 돌아왔다.

서둘러 보완책을 마련치 않으면 추가 유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국세청은 사태 파악조차 못한채 엉뚱한 대답만 되풀이하고 있다.

국세청 상담센터 직원은 "센터 측에선 고객 개별 조회가 가능하지 않아 답변을 주기 어렵다"며 "본인이 직접 자료 제공 신청을 하지 않았다면 대리인이 위임장을 통해 온라인이나 팩스로 신청했을 가능성이 있다. 별도의 신청 없이 자료 제공이 이뤄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답했다.

실무부서인 국세청 본청 원천세과 관계자는 "국세청의 입력오류일 수도, 당사자의 신청오류일 수도 있으나 구체척인 내용을 모르는 상황에서 답변하기 어렵다"며 "매년 연말정산때 확인할 수 있었던 문제 아닌가. 지금도 취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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