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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삼성은 왜 '북한스럽게' 보였나

기사승인 2017.12.15  16:5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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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오늘=김성현기자] 외신기자의 눈에 삼성은 왜 ‘북한’처럼 보였을까?

미국인 기자 제프리 케인(Geoffrey Cain)은 최근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삼성을 보면서 북한을 떠올렸다고 했다.

사업장 곳곳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찬양하는 글이 넘치고 일부 고위 임원들은 이 회장의 어록을 달달 외우며, 기자들의 취재를 철저히 통제하는 행태 등이 3대 세습 철권 통치로 악명높은 북한과 다를 바 없다는 취지였다.

제프리 케인은 내년 초 '삼성제국(Samsung Empire)'이라는 책을 낼 예정이다.

삼성은 제프리 케인이 인터뷰에서 주장한 내용에 대해 강도 높게 반박했다.

특히 이건희 회장 찬양이나 어록 외우기 등은 예전에도 현재도 존재하지 않는데, 허위 주장으로 삼성을 '이상한 집단'으로 비춰지게 했다며 제프리 케인과 이를 보도한 매체를 맹비난했다.

<위클리오늘>은 삼성의 반박대로 제프리 케인이 정말 아무 근거도 없이 '삼성이 북한스럽다'는 주장을 했는 지 확인하기 위해 그와 이메일 등으로 인터뷰를 했다. 제프리 케인은 현재 미국에 거주 중이다.

제프리 케인은 삼성의 반박에 대해 "질질짜는 어린아이(crying child) 같다. 매우 웃기는(funy) 일이다”고 <위클리오늘>에 답했다.

삼성을 북한과 연관시킨 것은 남북한을 합친 한국의 오랜 권위주의 문화가 글로벌 거대 기업인 삼성에 여전히 남아있는 사실이 놀랍다는 취지였는데, 이를 두고 자신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낸 것이라고 반박하는 게 마치 어린아이 투정처럼 들린다는 것이다.

제프리 케인이 보내온 2009년 삼성 썸머페스티발 모습. 삼성임직원들이 질서있게 앉아있고 대형스크린에는 최치훈 당시 삼성SDI 사장의 모습이 있다. 스크린 아래에는 '하나된 우리'라는 글귀가 보인다. <제공=제프리케인>

◆ "이건희 우상화와 북한 비유는 삼성맨들이 말한 것"

제프리 케인은 "미국에서도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삼성과 이건희 회장의 성공에 존경심을 표하지만 과거 남북한이 하나였던 시절에 존재했던 귀족주의와 군대식 구식문화가 여전히 삼성에 존재한다는 취지로 삼성을 북한과 비교했다"고 전했다.

이건희 회장 우상화와 관련해 북한을 언급한 것도 "나의 생각이 아니라 인터뷰 과정에서 만난 수많은 삼성 전 현직 임직원들이 스스로 표현한 것을 그대로 전한 것 뿐"이라고 했다.

제프리 케인이 '삼성=북한'이라는 이미지를 굳힌 계기는 2009년 삼성 한 사업장 방문과 같은 해 열린 ‘삼성 썸머 페스티벌’ 관람이었다.

특히 썸머 페스티벌에서는 수천명의 삼성직원들이 군대 대형처럼 질서정연하게 앉아 같은 디자인의 옷을 입고 지휘자의 통제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마치 북한의 대규모 선전집회를 떠올리게 했다고 한다.

제프리 케인은 당시 사진 한장을 보내왔는데, 전광판에 삼성SDI 최치훈 사장의 얼굴사진이 띄워져 있고 그 아래에 ‘하나된 우리’라는 문구가 적힌 커다란 간판이 걸려있다.

제프리 케인은 이를 보고 일전에 방문한 북한 청진 지역에서 본 ‘일편단심’이라는 커다란 선전간판을 떠올렸다고 전했다.

제프리케인은 '근거'를 부탁한 기자에게 여러 장의 사진을 보내왔다.

이 중에는 1994년 삼성그룹 계열사인 제일기획이 발간한 Samsung’s New Management(삼성의 신경영)라는 사내교육용 책도 있었다.

주된 내용은 이건희 회장의 1993년 프랑크푸르트 선언과 직원들이 배워야할 삼성의 모든 것이다. 책에는 이건희 회장의 여러 어록도 포함됐다.

“삼성에서 우리는 3가지 신조를 충실히 지켜야 한다. 불량품은 우리의 적이다. 불량품은 악의 근원이다. 그리고 우리가 불량품을 3번 생산하면 우리는 스스로 사임해야 한다”라는 이건희 회장의 말이 특히 인상 깊었다고 제프리 케인은 말했다.

제프리 케인은 전직 삼성 고위 임원들과 오너 일가의 인터뷰 내용도 첨부했다. 인터뷰는 녹음돼 있다고 했다.

인터뷰에서 한 전직 임원은 '신경영' 책을 ‘이건희 회장의 블루북’이라고 표현했다. 중국에서 성서처럼 여겨지는 마오쩌둥의 어록집 ‘레드북’에 빗댄 것이다.

삼성그룹 신입사원들의 교육용으로 사용되는 '삼성의 신경영' 책. 주된 내용은 이건희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과 어록 등이다. <제공=제프리케인>

또 다른 전직 임원은 "이건희 회장과 관련해 수많은 과장선전(propaganda)과 신화만들기(myth-making)가 있었다”고 케인에게 말했다.

케인은 "이 회장의 가까운 친척 중 한명은 '나는 신 같은 대우를 받았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삼성의 우상화 또는 신격화가 이건희 회장 뿐아니라 오너 일가 전반에 확산돼 있다는 의미다.

이건희 회장의 건강 상태를 언급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삼성 직원들의 태도도 미국인 기자의 눈에는 기이하게 보였다.

제프리 케인은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의 직원은 '동료들이 회장님의 건강상태를 언급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한다'고 했고, 삼성병원 직원들도 이 회장의 상태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분위기였다"고 했다.

제프리 케인은 “회장의 건상상태가 왜 그렇게 민감한 사안으로 취급되는 지 이해할 수 없다"며 "(봉건왕조 국가에서나) 왕이나 황제의 건강 악화를 거론하는 것이 민감한 문제로 취급된다”라고 말했다.

3년 이상 병실에 누워 사실상 삼성그룹을 더 이상 이끌 수 없는 이건희 회장이 회장직을 유지하는 것에도 의문을 품었다.

“이런 사실 또한 (이 회장이) 제국의 황제처럼 보이게 한다"는 것이 제프리 케인의 평가다.

12월 1일 삼성전자는 이건희 회장 취임 30주년을 기념한 특별영상을 삼성전자를 비롯한 모든 계열사에 틀어줬다.

해당 동영상에는 직원들이 이건희 회장의 쾌유를 비는 응원메시지도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에 대해 이 같은 의문을 던진 외신기자는 제프리 케인만이 아니다.

2013년 3월 28일 블룸버그 통신의 샘 그로바트(Sam Grobart) 기자는 ‘How Samsung Became the World’s No. 1 Smartphone Maker’(삼성은 어떻게 세계 1위의 스마트폰 제조사가 됐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삼성그룹의 인력개발원 창조관에 대해 자세히 묘사했다.

일명 ‘프랑크푸르트 룸’이라고 불리는 ‘신경영 경험관’(New Management Experien Hall)은 외신기자들 사이에서 이건희 신격화의 대표적인 사례로 통한다.

이건희 회장은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캠핀스키 그라벤부흐(Kempinski Gravenbuch) 호텔에서 이른 바 '신경영'을 선포했다.

삼성에서는 '프랑크푸르트 선언'이라고 부른다. 삼성의 대대적인 홍보 덕분에 국내에서는 1951년 7월 같은 곳에서 채택된 사회주의 강령 '프랑크푸르트 선언'보다 유명하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 가 당시 이건희 회장의 대표적인 어록이다.

프랑크푸르트 선언 당시 이건희 회장이 앉았던 책상, 의자와 배경 그림 등은 현재 모두 국내에 들어와있다. 선언 이후 삼성이 캠핀스키 호텔에서 몽땅 사온 것이다.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삼성 인재개발원 창조관에는 당시 이건희 회장이 발언하던 순간의 호텔 회의장 모형이 그대로 복사본 처럼 꾸며져 있다.

대다수 삼성 신입사원이나 임원들은 신입교육, 승진 연수 등을 위해 창조관을 방문하게 된다.

제프리 케인은 일부 삼성 직원들은 프랑크푸르트 룸을 “마치 교회와 같은 곳”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말소리도 함부로 낼 수 없는 신성한 장소라는 것이다.

블룸버그는 프랑크푸르트룸 복도에서 녹음된 이건희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이 반복적으로 울려 퍼진다고 묘사했다.

용인 인력개발센터 창조관내에 위치한 '신경영 경험 홀'을 소개하는 특별영상. 이건희 회장이 신경영 선포를 한 독일 프랑크푸르트 캠핀스키 호텔의 책상, 의자, 그림 등을 모두 옮겨놨다. <제공=제프리케인>

2013년 전국경제인연합이 공개한 ‘삼성 신경영 소개 애니메이션’에는 이건희 회장이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하게 된 배경설명이 나온다.

이건희 회장은 당시 삼성 사내 뉴스팀이 찍은 몰라카메라 영상 하나를 보게 된다. 영상에는 세탁기 뚜껑이 닫치지 않자 삼성서비스센터 직원들이 칼로 뚜껑을 깎아내는 장면이 담겼다.

이를 본 이건희 회장이 격노해 삼성그룹 모든 고위임원들을 프랑크푸르트로 소환해 훈계하는 과정에서 '선언'까지 하게 됐다는 것이다.

1995년 '품질경영'을 위해 15만대의 휴대폰을 불태운 '구미 휴대폰 화형식'을 다룬 장면에서는 “임직원들의 마음속에는 이건희 회장의 품질경영이 깊이 새겨졌다”는 표현도 등장한다.

삼성은 이건희 회장 개인을 우상화한 적이 없다고 강하게 반박했지만 구식 군대문화 등을 경험하지 못한 외신기자의 입장에서는 북한과 비교할 만한 정황이 충분한 셈이다.

삼성전자 홍보팀은 반박 보도자료에서 "삼성이 회장 개인을 우상화한다는 것이 허위라는 점은 삼성 임직원 누구에게라도 한차례만 확인하면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다"며 부실 취재를 탓했다.

"삼성 사업장 가운데 이건희 회장을 찬양하는 글이 넘치는 사업장은 지금은 물론 (제프리 케인이 삼성 취재를 시작한) 2009년 당시에도 없었다"는 주장도 했다.

하지만 삼성전자 공장에서 근무한 경험자들의 기억은 이와는 좀 다르다.

2007년 삼성전자 광주 공장에서 생산직으로 근무한 적이 있는 김모씨는 “당시 공장 곳곳에 이건희 회장의 말이 쓰여진 포스터와 현수막이 있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파란색 바탕에 품질경영 등을 강조한 이건희 회장의 어록이 담긴 6~7m 길이 현수막과 포스터가 천장과 벽 등 공장 곳곳에 걸려 있었다"고 했다.

김씨는 이건희 회장 취임 20주년이었던 그해 11월 광주 공장 전 직원이 하던 작업을 멈추고 바닥에 모여앉아 이건희 회장의 업적이 담긴 특별영상을 시청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 북한만큼 어려운 삼성취재

미국 인터넷신문 <글로벌포스트>의
제프리 케인(Geoffrey Cain) 기자.

제프리 케인은 삼성 취재가 북한 만큼이나 어렵다는 말도 했다.

삼성이나 오너일가에 대한 취재가 어렵다는 것은 외신기자 뿐 아니라 대다수 한국 기자들도 동감하는 일이다.

블룸버그 기자도 창조관 취재과정에서 '프랑크푸르트룸'을 촬영하고 싶었으나 홍보팀에 의해 저지당했다고 기사를 통해 밝혔다.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을 기념하고 삼성 모든 사원들을 교육하는 곳을 기자들에게 만큼은 꽁꽁 숨기는 것이다.

삼성 내 모든 직원을 상대로 상영한 이건희 회장 취임 10, 20, 30주년 특별영상도 기자에게는 공개를 거부했다.

<위클리오늘>은 용인 창조관과 프랑크푸르트룸 등을 확인하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삼성에 접근했지만 모두 “자신의 담당이 아니다”, “확인할 수 없다” 등의 답변만 돌아왔다.

제프리 케인은 북한 청진을 방문했을 때 정치적으로 민감한 지역에서 현지 가이드가 사진 촬영 등을 막은 경험을 삼성 취재와 비교했다.

철통보안은 삼성 직원들에게도 적용된다. 전자 등 일부 계열사의 직원들은 공장이나 사무실에 들어서기 전에 자신의 스마트폰에 보안 앱(APP) 등을 설치해야 된다.

해당 앱은 공장에 들어서면 스마트폰의 카메라 기능을 자동으로 정지시키는 역할을 한다. 공장 등을 나오기 전에 앱을 종료하거나 삭제하면 자동으로 보고된다고 한다.

공장 등에 이건희 회장 '신격화 현수막' 등이 있는 지도 근무 경험자의 고백 외에는 확인할 방법이 사실상 없는 이유다.

제프리 케인이나 블룸버그 샘 그로바트 기자 역시 이건희 회장 특별영상이나 '신경영' 교육용 책자 등을 확보하는 것만으로도 애를 먹어야 했다.

◆ 변화모색하던 '이재용 삼성'...국정농단 연루로 다시 실추

제프리 케인은 삼성의 권위적 문화가 한국사회 전체의 오랜 전통과 역사에서 빚어진 결과물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1993년 이후 삼성 문화를 혁신적으로 바꾸려고 했고, 실제로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킨 한 이건희 회장의 비전과 성과를 존경한다"며 "미국에서도 삼성과 비교될 만한 성과를 이룬 기업은 찾기 힘들다"고 했다.

2014년 이 회장의 와병이후 사실상 이재용 부회장 시대에 접어들면서 삼성의 이런 변화는 더 뚜렷해졌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2015년 7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으로 그룹 승계작업이 일단락된 이후 이재용 부회장이 보인 일련의 탈권위주의 행보는 삼성의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구식문화에 적잖은 변화를 몰아오고 있다.

기자가 접촉한 일부 직원들도 '이재용 삼성'이 과거의 삼성과는 다르다고 했다.

한 삼성전자 관계자는 “삼성에서 일을 시작한지 2년 정도 됐는데 외부에서 평가하는 삼성과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다. 물론 고위 임원들 간에는 여전히 군대식 문화가 존재한다고 들었다. 최소한 연차 낮은 직원의 입장에서는 군대식 문화를 체감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삼성 문화 혁신의 대표적인 예가 2016년 선포한 ‘스타트업 삼성’ 혁신 방안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3월 24일 시대 흐름에 맞지 않은 사고방식, 관행을 과감히 떨쳐내자는 취지에서 스타트업 삼성 문화혁신을 선언했다.

삼성전자는 2015년 7월 총 2만6000명의 임직원의 의견 1200여건을 분석해 조직문화 개선방향을 수립했다.

주요 전략은 ▲수평적 조직문화 구축 ▲업무생산성 제고 ▲자발적 몰입 강화 등이다.

또 복잡한 직급체계를 단순화 하고 직무와 역할 중심으로 인사제도를 개편하기도 했다.

벤처 기업의 특징인 빠르고 수평적인 보고체계를 수립하기 위한 ‘스피드 보고 원칙’도 이행했다.

특히 자발적 몰입 강화를 위해 도입된 ‘C랩’(씨랩) 시스템은 성공적인 성과를 내기도 했다.

C랩은 직원들이 자유롭게 팀을 만들어 새로운 아이템을 구상하면 회사가 이를 지원하는 시스템이다. 삼성전자는 C랩을 통해 시각장애인과 소방관 등에게 유용한 발명품을 내놓아 찬사를 받은 바 있다.

하지만 이재용 부회장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에 연루돼 사법처리를 당하면서 삼성의 대외 이미지는 또 다시 과거로 회귀하는 분위기다.

제프리 케인도 "이재용 부회장과 핵심 임원들이 대통령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감옥에 가 있다"며 "군대식 문화와 집단주의라는 전통적인 문화가 여전히 삼성의 골간(back bone)인 것 같다"고 꼬집었다.

김성현 기자 smre3810@one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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