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강남 사옥.<사진=뉴시스>

[위클리오늘=염지은 기자] 삼성을 북한에 빗댄 미국인 기자의 주장을 실은 한겨레신문의 인터뷰 기사에 대해 삼성이 반박,  '유감'을 표명하고 나서며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인터뷰어의 주장을 실은 데 대해 잘못된 팩트를 지적한 데서 나아가 인터뷰어의 느낌이나 생각을 전한 부분까지 문제 삼아 국내 최대 광고주가 '유감'을 공개적으로 표명하고 나선 것은 언론 탄압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삼성은 5일 한겨레신문이 이달 2일자로 게재한 미국인 기자 제프리 케인의 인터뷰 기사 '삼성의 성공은 시대의 산물…보스의 리더십 신화 버려야'에 대해 "전제가 되는 사실관계가 잘못됐고 허위이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한겨레의 이같은 보도는 회사의 이미지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임직원들의 자부심에도 깊은 상처를 주었다"며 "특정인의 일방적이고 극단적인 주장을 전하면서, 상대를 폄훼하는 표현까지 여과없이 보도한 한겨레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도 했다.

한겨레는 인터뷰 기사 서두에 "2009년. 미국의 시사전문 인터넷 매체 <글로벌포스트>의 수석 특파원 자격으로 한국을 처음 찾았을 때만 해도, 제프리 케인은 다른 외신기자들처럼 북한 문제에 주로 집중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우연히 삼성의 한 사업장을 방문했다가 받은 '충격'이 그의 마음을 바꾸게 했다"고 썼다.

그러면서 "사내 곳곳에 이건희 회장을 찬양하는 글들이 넘쳤고, 몇몇 고위 임원들은 회장의 연설이나 어록을 달달 외우더라. 마치 북한 사회에 와 있는게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는 제프리 케인의 말을 인용했다.

삼성은 이에 대해 "삼성 사업장 가운데 이건희 회장을 찬양하는 글이 넘치는 사업장은 지금은 물론 2009년 당시에도 없었다. 그 동안 한국 기자는 물론 외신 기자들 그리고 수많은 국내외 인사들이 저희 사업장을 방문했지만 한겨레가 전하고 있는 사례를 목격했다는 사람은 전혀 없다"며 기사 내용이 "허위"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한겨레는 삼성에 단 한 차례 확인조차 하지 않고 보도해 사실 관계를 오도했다"며 "글로벌 기업 삼성을 역사상 최악의 독재국가인 북한과 비교하는 주장을 여과 없이 게재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삼성은 또 "한겨레는 한국의 대표 기업인 삼성을, 폭압으로 통치하고 있는 북한에 비유한 것을 그대로 기사화함으로써, 삼성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를 독자에게 전달하고 있다"며 "이건희 회장을 찬양하는 글이 넘치는 사업장도 없지만, 북한에서처럼 전 사회 구성원들이 수령의 말씀과 혁명역사를 '달달 외우듯' 하는 삼성 임원은 없으며, 회사가 그런 일을 요구하는 것도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범삼성가' 고위 관계자와 삼성 임직원 등 1000여명을 두루 만났다 ▲삼성 서머 페스티벌에 대해 삼성 임직원이 '마치 북한 사회 전시행사 같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삼성 직원들이 '삼성이 두렵다'며 전화조차 피했다 등 한겨레가 인용하고 있는 주장들은 사실 여부가 의심스럽다고 했다.

▲봉건제에서나 볼 법한 '삼성맨'의 충성심 ▲삼성이 자신들의 성공을 '가문의 영광'으로 자축하지 말아야(中略) ▲기술은 세계적인 수준이면서도 가족경영을 유지하는 등 기이한 양면성 등의 표현으로 삼성과 임직원을 시대착오적인 '이상한 집단'인 것처럼 몰아붙이고 있다고도 비판했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제프리 케인 기자는 북한 사회에 삼성을 빗댄 이유를 묻는 질문에 “비판이 아니라 단지 시대상이 그렇다는 거다. 삼성이 성장하기 시작한 1960~1970년대 한국은 기존의 북한사회와 비슷한 면이 있다. 정치적으로 박정희 정권의 군사독재를 거치면서 한국만의 특수한 기업 문화가 만들어졌다. 보스(회장) 한 사람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운영 방식이 (기업에도) 스며든 것이다. 현대·엘지·롯데 등 한국의 다른 재벌에게도 이러한 ‘군대’ 방식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했다.

삼성의 성공 케이스를 한국 경제의 일반적인 특성으로 보느냐는 질문에는 "한 개인의 리더십에서 탄생했다기보다는, 시대적인 흐름에서 나온 성과로 보는게 맞다"고 했다. 또 "일본은 이겨야 한다는 구민의식, 적어도 북한보다는 성장을 해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이뤄진 시대적 본능이 현재의 ‘삼성 신화’와 재벌 문화를 만들었다"며 "삼성이 자신들의 성공을 '가문의 영광'으로 자축하지 말아야할 이유가 이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식 재벌 체제가 갖는 긍정적인 면에 대해서는 "이 회장은 그동안 '잡음'이 있었음에도 오늘날 삼성의 성공에 적잖은 기여를 했다. 현재 삼성은 일본 기업 소니를 뛰어넘었고 미국 기업 애플을 바짝 뒤쫒고 있다. 군대식 접근법을 통해 이루어낸 성장은 일부나마 분명 성공적이었다. 재차 말하지만 삼성이 그를 리더가 아닌 ‘신화적’ 존재로 만들려고 하는 게 문제다"고 말했다.

한겨레는 제프리 케인 기자의 인터뷰 기사에 ▲기술은 세계적, 기업운영은 봉건적 ▲"삼성맨의 충성심, 더는 요구 말아야" ▲"'가문의 영광'으로 자축하지 말고 노동자 인권 챙기며 거듭나야" 등의 부제를 달았다.

지면 제목인 '삼성의 성공은 시대의 산물…보스의 리더십 신화 버려야'는 인터넷 판에선 "'삼성 제국' 출간하는 미국인 기자 "북한 취재보다 어려웠다""로 바뀐 상태다.

한편, 한겨레 인터뷰 기사에 반박하고 나선 삼성에 대해 30년 넘게 대기업에서 근무한 베테랑 홍보인은 "기사에 관심없던 사람들도 삼성이 반박에 나서며 기사 내용을 관심있게 보고 있다. 대응을 안했으면 그냥 넘어갔을 일을 삼성이 대응을 잘못 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전직 한겨레 신문 기자는 "팩트가 일부 잘못됐다면 팩트만 지적하고 넘어갔으면 되는데 인터뷰 기사 전반에 대해 삼성이 유감 표명을 하고 나선 것은 언론 탄압으로 비쳐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제프리 케인 기자는 한국에 오기 전 '이코노미스트'와 '파 이스턴 이코노믹 리뷰'의 아시아 담당 전문기자로 활동했다. 캄보디아의 노동 문제를 다룬 탐사보도로 아시아출판인협회가 주는 '아시아 최고 기자상을 받았고, 2015년 북한을 방문해 김정은 체제의 북한 사회를 취재하기도 했다.

케인은 삼성에 대한 취재 내용을 담은 책 '삼성 제국'을 내년 2월 미국에서 출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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