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위클리오늘=염지은 기자] 재벌 공익재단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수조사가 시작되며 재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재벌개혁을 주도하고 있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은 최근 5대 그룹(삼성·현대차·SK·LG·롯데) 전문경영인과의 간담회에서 “기업들의 자발적 개혁의지가 의심된다”며 12월부터 대기업들이 운영하는 공익재단 운영 실태를 전수조사하겠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취임 이후 가맹점 갑을 문제 해소에 집중해오다 재벌개혁 1호로 공익재단을 겨누고 있다.

특히 공익재단을 승계에 적극 활용해온 삼성에 이목이 쏠린다. 삼성은 삼성생명공익재단·삼성문화재단· 삼성복지재단· 호암재단 등의 공익재단을 운영하고 있다.

김상조 위원장은 경제개혁연대 소장 시절 삼성생명공익재단이 그룹 내 지주사 격인 삼성물산의 지분 확보를 통해 이 부회장의 승계를 지원한 것이라며 강도 높은 비판을 했다.

이번에 공정위가 주목하는 부분도 공익재단이 공익사업을 시행한다는 명분으로 상속세와 증여세 등 세제 혜택을 받으면서 보유한 계열사 지분을 이용해 대기업 총수가 부당하게 지배력을 강화하거나 경영권 및 재산을 편법으로 승계했는 지 등이다.

◆ 이재용, 삼성생명공익재·삼성문화재단 이사장 '깜작' 승계...3세 총수의 길로

2015년 5월15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삼성의 계열법인인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삼성문화재단 이사장에 깜짝 취임했다.

이재용 부회장이 두 공익재단의 이사장직을 맡는 것은 이건희 회장의 뒤를 이어 3세 총수의 길로 들어선 상징적인 조치로 받아들여졌다.

이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삼성생명 지분 2.18%, 4.68%, 2.18%를 각각 보유한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삼성문화재단 이사장직을 물려받는 방법으로 삼성생명 지분 6.86%를 우호지분으로 확보했다. 

순수 개인 지분은 0.06%밖에 안되지만, 삼성물산 지분 19.34%에 재단 지분 6.86%를 합쳐 사실상 삼성생명 최대주주(26.26%) 지위에 올라섰다.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물산의 지분도 17.08%를 보유해 최대주주다. 

삼성생명(8.19%)과 삼성물산(4.61%)을 통해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까지도 확실하게 지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에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공익재단을 편법적 승계수단으로 악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송기석 의원은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생명 공익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할 당시 삼성 미래전략실 모 전무가 장충기 전 사장과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를 입수해 공개했다.

송 의원이 공개한 메시지에는 '네이버와 다음에서 대상 기사 모두 내려갔습니다. 포털 측에도 부탁해 뒀습니다'라는 문구가 담겼다.

이재용 부회장의 공익재단 이사장 취임이 미전실에서 포털 기사를 관리할 만큼 중요했던 이유는 이 부회장의 ‘승계’가 관련된 일이었기 때문이다.

삼성은 이 부회장의 재단 이사장 취임 두달 후인 2015년 7월17일에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추진했다.

삼성물산 소액주주들의 반발에 헤지펀드 엘리엇까지 가세하며 주주총회에서의 합병안 통과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삼성은 자사주를 KCC에 매각해 의결권을 살리는 '백기사 전술'까지 동원했다.

합병안은 국민연금의 찬성을 등에 업고 간신히 주총을 통과했다. 덕분에 통합 삼성물산의 최대주주(17.23%)로 올라선 이재용 부회장은 구 삼성물산이 보유했던 삼성전자 지분 4.02%에 대한 지배력도 덤으로 얻었다.

이 탓에 통합 삼성물산은 삼성그룹의 사실상 지주회사 지위에 올라섰지만 신규 순환출자고리 형성으로 법을 위반했다는 논란이 제기됐다.

삼성은 이에 공익법인을 동원해 문제 해결에 나선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위치한 삼성생명공익재단, 삼성문화재단, 삼성복지재단, 삼성장학회 사무실 건물. 창문 하나 없이 폐쇄적인 건물 구조로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된다.

◆ 삼성물산-제일모직 신규 순환출자 해소에도 재단 이용

지난해 2월 25일 삼성SDI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따른 신규 순환출자 해소를 위해 삼성물산 주식 500만주, 총 7650억원 어치를 매각했다.

500만주중 200만주, 3060억원 어치는 계열법인인 삼성생명공익재단에 매각됐다. 이를 통해 삼성생명공익재단은 삼성물산 지분 1.05%를 취득하게 된다. 같은 날 이재용 이사장도 삼성물산 주식 2000억원 어치를 취득했다.

공익재단이 이재용 부회장의 후계구도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신규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하는데 이용된 것이다.

결국 공익법인의 재산을 이사장 사적용도에 사용한 것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 삼성물산 주식 취득, 상속증여세법 위반 논란

참여연대는 "삼성생명공익재단이 출연재산의 매각대금을 공익 목적사업이 아니라 재단 이사장인 이재용 부회장의 이익을 위해 사용한 것으로 이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 위반소지가 다분하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는 지난해 3월 국세청에 삼성생명공익재단의 삼성물산 주식 취득에 대한 증여세 부과를 촉구했다.

공익법인의 경우 출연재산 매각대금은 3년 이내에 공익목적사업을 위해서만 사용하도록 한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48조 제2항 제4호를 위반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삼성생명공익재단이 삼성물산 주식을 취득한 자금은 애초 이종기 전 삼성화재 회장이 출연한 5천억원 상당의 삼성생명 주식을 팔아서 조달한 것이다.

김상조 공정위원장은 경제개혁연대 소장 시절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 취임→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삼성생명공익재단의 삼성물산 지분 매입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은 ‘세금없는 부의 대물림’을 위한 과정이라고 비판했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은 공익법인이 출연 받은 자산은 공익목적사업에 사용할 경우 원칙적으로 증여세가 과세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삼성 같은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이 공익재단에 출연하면 의결권 있는 발행주식총수 또는 출자총액의 5% 초과분에 대해서만 상속 또는 증여세가 과세된다(성실공익법인 10%).

재벌총수가 계열사 주식 5%를 공익재단에 출연하고 이사장직을 양도하면 한푼의 증여세도 내지 않고 5%의 우호지분을 확보하고 상속 또는 증여세 부담 없이 지분을 상속·증여해 주며 경영권도 넘겨주는 효과가 발생한다. 공익사업을 한다는 명분도 얻을 수 있다.

삼성생명공익재단이 계열사 지분을 해소해 지배구조의 정당성을 확보하지 않고 삼성물산의 공익법인 지분 비중을 늘리며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물산 지분 승계를 지원하는 ‘편법’을 동원한 것이다.

◆ 그룹 지배 핵심고리, 삼성생명·삼성물산 지분 확보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삼성문화재단은 삼성그룹 그룹 지배의 핵심고리인 삼성생명과 삼성물산의 지분을 상당수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삼성생명공익법인의 삼성생명과 삼성물산의 지분은 각각 2.18%, 1.05%에 달했다.

11월23일 기준 삼성생명 시가총액은 26조4000억원으로 2.18%는 5755억원 규모에 달한다. 삼성물산의 시가총액은 26조2721억원으로 1.05%는 2759억원 규모다. 8500억원이 넘는 지분을 세금없이 상속한 셈이다. 삼성생명공익재단은 지난해 삼성생명으로부터 78억4000만원의 배당을 받기도 했다.

삼성생명공익법인은 삼성 계열사인 에스코어와 미라콤아이앤씨의 주식도 각각 0.14%씩을 갖고 있다. 자산총액 2조1066억원중 삼성계열사 주식 비율은 25.51%에 달한다.

삼성문화재단도 계열사 지분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삼성생명 4.68%, 삼성물산 0.60%, 삼성전자 0.02%, 삼성화재 3.06%, 삼성SDI 0.58%, 삼성증권 0.25% 등 자산총액에서 핵심 계열사 주식이 차지하는 비율이 8.41%에 달하고 있다. 특히 삼성생명은 이건희 회장(20.76%), 삼성물산(19.34%)에 이어 3대 주주다.

◆ 대를 이은 공익재단 이용 상속세 ‘절세’...사회환원은 '뒷전'

공익재단을 이용한 상속세 절세에 대한 우려는 삼성그룹의 3세 경영권 승계에서 오래전부터 제기됐다.

삼성그룹의 창립자인 고 이병철 선대 회장도 이건희 회장에게 경영권을 세습하며 삼성문화재단, 삼성공제회 등의 공익재단을 상속세 회피 수단으로 활용했다. 공익재단에 주식을 출연하고 공익재단이 이건희 회장에게 다시 되파는 방법으로 경영권을 이전했다.

삼성생명공익재단이 삼성물산 주식을 취득한 자금의 원천은 이건희 회장의 불법적 재산승계에 활용됐던 차명주식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는 등 사회적으로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없는 자금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공익재단은 총수의 세금없는 부의 세습에 악용되며 사회환원이란 본연의 역할은 뒷전이었다.

지난해 삼성생명공익재단의 수입 총계는 1조4169억7400만원. 이중 재단 고유목적에 쓰인 사업비는 124억5600만원으로 0.88%에 그쳤다. 어린이집 운영지원 76억2500만원, 상찬사업(삼성행복대상) 7억4500만원, 연구지원 40억8700만원 등이다.

삼성생명공익재단의 수입도 고유목적 사업에 맞는 기부금 등으로 인한 수익은 1472억1800만원에 그치고 있다. 입원수익 5896억8700만원, 외래수익 4350억1500만원, 기타 1160억2500만원 등이다. 삼성생명공익재단은 삼성서울병원을 운영한다.

삼성문화재단이 지난해 고유목적사업비로 사용한 금액도 장학사업 86억7000만원, 문화학술단체지원 9억5000만원 등 96억2000만원으로 총수입 797억6000만원의 12%에 그쳤다.

삼성생명공익재단은 아울러 계열사들의 출연금으로 수입을 올리고 이재용 부회장이 이사장직을, 전직 계열사 임원이 대표를 맡고 있어 독립적 운영이 불가능하다.

삼성전자를 포함한 삼성 계열사들의 지난해 삼성생명공익재단 출연금은 1270억원으로 지난 기부금 수입 1306억4000만원의 97%에 달했다.

삼성전자가 1092억7600만원을 출연해 압도적으로 많았고 이어 삼성디스플레이(105억원), 삼성SDS(17억원), 삼성물산(16억원), 에스원(8억원), 제일기획(7억원), 호텔신라(3억원), 삼성카드(2억원), 삼성물산 패션부문(4100만원) 등의 순이다.

삼성생명공익재단의 상근 대표는 삼성정밀화학 대표를 지낸 성인회씨가 맡고 있다.

◆ 공정위, 자산규모 5조원 이사 대기업 집단도 조사?

한편, 공정거래위원회 기업집단국은  자산 10조원 이상 대기업 집단  20곳 39개 공익재단을 전수조사할 계획으로 알려졌으나 조사 대상에 자산규모 5조원 이상  57개 대기업이 포함될 수도 있다. 

공정위 기업집단정책과 육성권 과장은 "조사 대상을 자산규모 10조원으로 할지 5조원으로 할 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며 "12월 중에 조사 대상을 확정해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자산 10조원 이상 대기업 집단 공익재단은 삼성생명공익재단·삼성문화재단·삼성복지재단·호암재단, 현대차정몽구재단, SK행복나눔재단, LG연암문화재단·LG연암학원, 롯데문화재단·롯데삼동복지재단·롯데문화재단 등이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금호산업 인수과정에서 불거진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과 죽호학원 등의 공익재단 편법 이용도 논란이 되며 공정위가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자산 규모 5조원 이상 대기업집단에는 네이버, 동부그룹, 동원그룹, 코오롱그룹, 이랜드 등이 포함돼 있다. 

김상조 위원장은 공익재단 조사와 관련해 “공익재단이 계열사에 대한 부당지원 혐의가 있는지 의구심이 많아 조사를 해보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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