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덕 아르테온 모델하우스가 지난달 27일 개관 첫날 방문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 현대건설 제공

[위클리오늘=안준영 기자] "딱지(분양권) 못 구해요. 요즘엔 전혀 안해요. 불법이라고 조사하고 난리잖아요" (서울 강동구 상일동 A공인중개소 관계자) 

"셋이서 입 닫으면 되요(안 걸려요). 저희가 전문이니 안전하게 (불법 전매) 해드려요" (인근 떴다방 업자)

8·2 부동산 대책후 서울 아파트 분양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던 '떴다방'(이동식 중개업소)이 강남발(發) '로또 청약' 열풍을 타고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서울 전역이 입주시까지 분양권 전매가 금지됐지만 업자들은 신종 계약 수법을 동원해 모델하우스(견본주택)를 찾는 주택 수요자들에게 불법 전매를 알선하고 있다. 정부가 떴다방과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정작 출몰 지역인 신규 분양 현장은 손을 놓고 있어 시늉뿐인 단속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 9일 서울 강동구 지하철 5호선 상일동역 앞에 마련된 '고덕 아르테온' 견본주택은 청약 결과가 나왔는데도 내방객들의 발길이 꾸준했다. 통상 견본주택은 분양 당첨자 발표 이후엔 파장 분위기지만 이 곳은 흥행 대박의 여운이 남아있는 듯 했다.

현대건설과 대림산업이 상일동 고덕주공3단지를 재건축해 공급하는 대단위 아파트 단지 고덕 아르테온은 10·24 가계부채 종합대책 발표 후 첫 분양 케이스다.

청약시장 가늠자로 주목받았는데 뚜껑을 열어본 결과 일반 분양이 최고 110대 1, 평균 10.5대 1의 경쟁률로 전체 9개 주택형이 1순위 마감됐다. 일반분이 1397가구로 올해 강남4구 재건축 물량 중 최대다.

견본주택내 창구 상담 직원은 "(분양권)전매 금지 조치로 (청약에서) 떨어진 사람이 구입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며 "부적격자, 미계약자 등을 감안해 예비 당첨자를 40% 정도 잡아놓았다. 기다려도 가능성은 제로(0)"라고 잘라말했다.

과연 그럴까.

◆ 신종 수법으로 불법 전매 알선강동구 웃돈 5000만원

견본주택 밖으로 나가니 4~5명의 중년 남녀가 입구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신분을 감추려는 듯 선글라스를 낀 여성이 견본주택 주위에 버젓이 간이 테이블을 차려놓고 낮은 목소리로 호객 행위를 하고 있었다.

같은 팀으로 보이는 남성은 견본주택을 보고 나오는 이에게 따라 붙었다. 당첨받은 사람에게 분양권을 팔라고 설득하기 위해서다. 그는 견본주택을 보고 나오는 한 여성에게 "당첨되셨느냐. 잠시 이야기 좀 하자"고 접근하다, 아니라는 말에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청약 탈락자로 가장한 기자가 테이블에 앉은 떴다방 여성에게 다가가 "떨어졌는데 방법이 없겠느냐"고 낚싯밥을 던지자 "하나 사시면 되지"라며 질문 세례가 이어졌다.

기자가 "전매가 안되지 않느냐"고 떠보자 "돈 주고받고 해서 3년 후에 명의 이전한다. 우리가 모든 안전 장치를 해드린다"고 장담했다.

신규 아파트 입주권을 명의 변경해 제3자에게 넘기는 분양권 전매는 엄연히 불법이다. 8ㆍ2대책으로 11월부터 서울 전역과 과천ㆍ광명의 모든 택지에서 소유권 이전 등기시까지 공급주택의 전매가 금지된다.

그는 "그 분(분양권자)의 모든 권리서류와 포기각서, 이행각서를 받는다. 인감은 물론 필요하면 공증까지 한다"며 "그 분 가족관계증명서와 주민등록초본도 받는다"고 안심시켰다.

업자들이 마련한 안전장치는 '권리확보 서류'다. 매도물권리포기각서와 거래사실확인서, 위임장 등으로 구성된 십수종의 계약증명서다.

기자가 "가족관계증명서는 왜 받느냐"고 반문하자 "당첨자(분양권자)와 연락이 안되면 그 가족을 접촉해야 할 것 아니냐"고 답했다. 그러면서 "웃돈(프리미엄)은 평형과 무관하게 5000만원 생각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주변 시세 대비 낮은 분양가(평균 2346만원)로 '로또 청약'으로 불리는데 급매물(분양권)이 나오는 이유에 대해선 "돈없는 분양권자들이 있잖아. (국가)유공자, 신혼부부가 특별공급분을 당첨받았는데 분양금을 못 내는 경우 등"이라고 말했다.

탈이 없겠냐고 재차 캐묻자 "사장님(기자)이 신고할 것도 아니고 판 사람이 신고할 것도 아니고 부동산(떴다방)도 신고할게 아니잖느냐. 사실 걸리면 우리가 타격이 제일 크다"며 "3명이서 입만 닫으면 안전하게 할수 있다"고 단언했다.

이어 "차명계좌로 계약금만 보내고 나머지는 현금 또는 수표로 주면 된다. 우리가 다 세탁해 준다"며 "계약금에서 잔금까지 하루 이틀 밖에 안 걸린다, 길어도 1주일내"라고 소개했다.

◆ "떴다방 몫은 500만원"…뒷북 단속ㆍ늑장 법개정 투기 부추겨

떴다방 업자의 말을 빌리면 분양권자(당첨자)가 본인 명의로 건설사에 계약금을 넣고 전매권자는 차명으로 분양권자의 계좌에 계약금을 보낸다. 고덕 아르테온의 분양 계약금 납부 기간은 13일~16일까지다.

그러면 분양권자는 각종 권리ㆍ본인 인증 서류를 넘겨준다. 잔금은 떴다방 업자가 지정하는 곳에서 만나 지급한다. 분양권 전매제한이 끝나는 3년 뒤 입주 시점에 소유권 등기를 이전하게 된다.

기자가 대금 전체(분양대금+웃돈)를 만나서 한번에 주는게 깔끔하지 않냐고 묻자 "그 전에 (분양권자가) 마음이 언제든 변할수 있다. 다른데서 조금 더 준다고 하면…"이라고 했다. 계약금 입금이 분양권자의 단순 변심을 막는 자물쇠인 셈이다.

떴다방 업자는 "(전매권자가) 우리 쪽에 지급할 수수료는 500만원"이라며 "(전매제한 기간이) 6개월짜리는 200, 1년 6개월짜리는 300, 3년 짜리는 500"이라고 제시했다.

입주시까지 분양권 전매 금지라는 강력한 규제에도 떴다방이 다시 기승을 부리는 것은 강남권 로또 청약 열풍으로 투기 수요가 몰리고 있어서다. 8ㆍ2 대책 이후 서초구를 비롯해 강남권 부동산 거래절벽이 심화되자 초조해진 중개업자들이 일감을 얻기 위해 분양 현장으로 뛰쳐나왔다는 시각도 있다.

업자들은 주말 모델하우스 오픈 당일부터 입구 옆에 수십명이 줄을 지어 견본주택을 보고 나오는 예비 청약자들의 신상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분주히 움직인다. 청약 당첨 결과가 나오면 당첨자와 낙첨자를 연결해 분양권 전매를 알선하려는 목적이다.

실제 이날 견본주택내 한 쪽 벽면에는 당첨자의 동ㆍ호수 및 대략적인 성명과 주민번호가 누구가 볼수 있게 부착돼 있었다. 떴다방 업자에게 당첨자의 개인 정보가 새나갔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분양권 전매는 모험을 하는거다. 불법 여부를 떠나 집값이 오른다면 모를까 오르지 않는 상황에서는 위험한 도박"이라고 지적했다. 김수연 닥터아파트 리서치팀장은 "본인들이 처벌을 감수하고 음성적으로 하겠다는데야 방법이 없지 않겠나"고 말했다.

두어시간 이상 견본주택 내외를 맴돌았지만 공무원의 단속의 손길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앞서 국토부는 분양 열기가 이상 조짐을 보이자 서울 강남권 등에 대한 청약 불법행위 집중 실태 조사를 진행했지만 업계에선 뒷북 행정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단속 시점을 사전예고한 것은 보여주기식 면피성 조치라는 지적이다.

정치권의 딴지도 문제다.

지난 9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분양권을 불법 전매해 3000만원 이상 차익을 남기면 그 3배까지 벌금을 물리는 '주택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지만 일부 의원들의 반대로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두달째 잠자고 있다.

저작권자 © 위클리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