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서초사옥.<사진=뉴시스>

[위클리오늘=염지은 기자] 삼성전자가 배당과 자사주 매입·소각을 대폭 확대하고 있다.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직후인 2015년 하반기부터다.

‘배당’과 '자사주 매입 및 소각'은 대표적인 주주환원 정책이다. 주주의 이익을 늘린다는 측면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활동으로 비쳐진다.

하지만 삼성의 주주환원정책에 대해선 곱지 않은 시각이 많다. 

삼성전자의 배당 확대와 자사주 소각으로 가장 큰 혜택을 보는 것은 결국 이건희 회장 일가와 삼성생명·삼성물산 등 계열사들이기 때문이다.

삼성은 '글로벌 초일류 기업'이라는 평가와 함께 '노블레스 말라드(부패한 부자)'의 상징이라는 극단적인 평가를 오간다.

기술과 돈벌이에서 세계 1등인 삼성이 부패의 상징이 된 근원은 무얼까?  

문제는 결국 삼성 상층부에서 찾을 수 밖에 없다. 삼성의 오욕은 이씨 가문과 가신(家臣)그룹의 합작품이다.

대물림되는 삼성 상층부의 편법과 불법은 '세금없는 경영권 승계 전략'에서 비롯됐다.

애초부터 서민들처럼 낼 세금을 다 내고 승계를 하려 했다면 '삼성 특검'도 '최순실 송금'도 없었을 것이다.

1996년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 발행으로 시작된 삼성의 3대 세습 전략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으로 20년 만에 골격을 완성했다.

이건희 회장 사후 상속세로 낼 현금만 확보해 주식을 물납으로 안내도 되면 완전무결하게 세습을 완결할 수 있다.

지금 추세라면 삼성의 전략은 기대 이상 성과를 거둘 가능성이 높다. 

삼성전자의 통큰 배당과 자사주 소각 확대 덕분이다. 때마침 찾아온 사상 최대 반도체 호황기까지 도와주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영원칙 제1호는 '법과 윤리 준수'다. 현실은 수뇌부의 감옥살이다.

'노블레스 말라드'(noblesse malade), 삼성의 탈출구는 없는 걸까.

◆ 삼성전자 배당·자사주 소각 올인...이건희 회장 와병 직후 급격 확대 

삼성전자는 10월 31일 3분기 실적과 함께 대규모 배당과 자사주 매입·소각 등의 내용을 담은 ‘3개년(2018~2020년) 주주가치 제고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주주환원을 위해 올해만 순이익의 절반에 달하는 약 17조원을 쏟아부을 예정이다.

삼성은 지난해 현금 배당과 자사주 매입 및 소각에 11조1312억원을 사용했다. 3조9919억원을 현금 배당하고 7조1393억원의 자사주를 매입했다. 당기순이익(22조4160억원)의 절반(49.7%)에 해당하는 금액을 주주환원으로 썼다.

올해 순익 예상치인 40조원에 지난해 배당성향 17.8%를 적용하면 삼성전자의 올해 현금 배당액은 지난해 두배에 육박하는 6조8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여기에 더해 삼성전자는 올해 총 9조3000억원의 자사주 매입을 결의했다. 7월 말까지 2회 차에 걸쳐 약 5조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했다.

삼성전자는 2015년 10월부터 배당금 확대와 자사주 소각 등의 주주환원정책을 시행해 왔다. 공교롭게도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2014년 5월10일 직후부터다.

삼성전자는 2015년 3분기 실적 발표와 함께 3개년(2015~2017) 주주환원 정책을 발표, "잉여현금흐름의 30~50%를 배당 또는 자사주 매입에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발표 후 이듬해인 2016년 3분기까지  11조3000억원의 대규모 자사주에 대한 매입·소각을 진행했다. 삼성전자의 자사주 소각은 지난 2003년과 2004년 이후 처음이었다. 

삼성전자는 이어 지난해 11월말에도 '중장기 주주가치 제고방안'을 다시 발표하며 2016년 및 2017년 연간 잉여현금 흐름의 50%를 주주환원에 활용할 것과 올해부터 분기별 배당을 시행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올해 1월에는 2017년 한해동안 3~4회에 걸쳐 9조3000억원의 자사주를 매입·소각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9월14일 현재까지 총 5조9800억원의 자사주를 매입·소각했으며 매분기 주당 7000원의 배당을 실시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삼성전자는 올 4월,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40조원 규모의 자사주(보통주 1798만1686주, 우선주 161만여주)를 소각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추가적인 배당 및 자사주 매입 및 소각 계획이 담길 향후 3년(2018~2020) 주주가치 제고방안도 이달 말 예고돼 있다.

내년부터 2019년까지 순이익이 50조원을 넘어설 수 있다는 관측을 근거로 지난해 현금 배당 성향 17.8%를 적용하면 삼성전자의 현금 배당액은 연간 8조9000억원, 3년간 26조7000억원에 달하게 된다.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한 규모도 11조4000억원(2015년 4분기~2016년 3분기), 올해 9조3000억원으로 향후 3년간도 연간 10조원씩을 추산하면 3년간 30조원의 자사주 매입 및 소각이 추가로 이뤄질 전망이다.

◆ 2020년까지 총수일가 현금배당만 8조원 이상…오너 지배력 강화·승계자금 확보

삼성전자의 현금 배당 확대 및 자사주 매입·소각은 주주의 자본이득과 배당소득이 늘어난다는 긍정적인 효과와 함께 최대주주인 이건희 회장 등 오너 일가와 특수관계인의 지분율을 더욱 높인다. 이들의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시키는 수단으로도 활용된다.

삼성전자 최대주주와 그 특수관계인에 해당하는 이건희 외 5인, 삼성물산 외 4개사에 대한 배당액은 2014년 5210억원, 2015년 5470억원, 2016년 7417억원에 달했다. 

오너와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삼성전자의 총 지분율은 의결권이 없는 우선주를 제외한 보통주 기준 20.0%다.(10월16일 기준) 오너 일가인 이건희 회장 3.84%, 부인 홍라희씨 0.83%, 아들 이재용 부회장 0.65% 등은 모두 5.32%를 소유하고 있다.

나머지 특수관계인 지분은 삼성생명 8.53%(특별계정 포함), 삼성물산 4.61%, 삼성화재 1.43%, 복지재단 0.07%, 문화재단 0.03% 등이다.

올해 삼성전자의 현금 배당액이 7조원이라고 가정하면 오너 일가와 삼성전자의 특수관계인이 받을 배당금은 1조4000억원에 달한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3년간 삼성 오너 일가와 특수관계인이 받을 현금 배당금은 5조34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연간 순이익 50조원씩을 가정해 지난해 배당성향 17.8% 적용, 지분율 20.0%를 3년간 곱한 수치다.

주주환원 정책을 확대한 2015년부터 2020년까지 6년간 삼성 오너 일가와 특수관계인이 챙기는 현금배당금만 8조원이 넘는다. 특히 오너 일가는 삼성생명, 삼성물산 등 삼성전자의 특수관계인 회사의 최대주주로 실제 현금 배당은 더욱 늘어가게 된다.

삼성생명은 이건희 회장의 지분율이 20.76%에 달한다. 이재용 부회장의 개인 지분은 0.06%지만 이 부회장이 최대주주인 삼성물산이 19.34%의 지분을 보유해 2대 주주다.

삼성물산은 총수 일가가 31.17%를 보유하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이 17.08%, 이부진·이서현 남매가 각 5.47%, 이건희 회장이 2.84%,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넷째 딸 덕희씨의 장녀 이유정씨가 0.31%의 지분을 갖고 있다.

이건희 회장은 지난해 1902억원의 배당수익을 올리며 8년 연속 국내 기업 총수 중 가장 많은 배당을 받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0월 1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1차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사진=뉴시스>

◆ 이재용 일가 및 특수관계인 지분 10년후 30%대로

삼성 오너 일가는 현금 배당은 물론 자사주 소각을 통해서도 지분율을 늘리며 삼성의 경영 지배권을 강화하고 있다.

자사주를 매입할 수 있는 삼성전자의 현금성 자산(현금 및 즉시 현금화할 수 있는 수표와 예금 등)은 지난해 말 기준 32조1100억원으로 2008년 말 대비 14배나 급증했다.

삼성전자는 올해 총 9조3000억원의 자사주 매입을 결의했다. 7월 말까지 2회 차에 걸쳐 약 5조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했다. 이에 따른 삼성 오너 일가와 특수관계인의 삼성전자 지분율은 1월 18.45%에서 현재 20.0%로 1.5%p가 늘었다.

연말까지 4조3000억원 어치의 자사주 매입 규모가 남아있어 지분율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삼성전자가 매년 10조원씩, 2018년부터 2020년까지 3년간 30조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한다고 하면, 현재 1주당 260만원씩을 기준으로 1153만8461주를 소각하게 된다.

삼성전자의 상장 보통주식 수는 1억2976만8494주. 여기서 1153만8461주를 뺀 1억1823만33주를 분모로 이건희 회장이 갖고 있는 보통주식 수 498만5464주를 나누면 이 회장의 지분율은 3년간 3.85%에서 4.22%까지 상승, 0.37p 늘어난다.

이재용 부회장의 보통주식수 84만403주, 홍라희씨의 보통주식수 108만3072주도 같은 식으로 대입하면 이 부회장의 지분은 0.65%에서 0.71%로 0.06%p, 홍라희 관장의 지분은 0.83%에서 0.92%로 0.09%p 각각 증가한다.

이건희 회장, 이재용 부회장, 홍라희 관장 등 오너 일가의 지분은 5.32%에서 5.85%로 0.53%p 늘어나게 된다.

총수 일가와 특수관계인의 보통 주식총수는 2595만1580주. 같은 식으로 지분율은 20.0%에서 21.96%로 1.96%p 증가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10년간 하면 약 10%p 가량 지분을 늘릴 수 있다. 현재 20%의 지분율을 30%대까지 끌어올려 삼성전자와 계열사들에게 대한 지배권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다.

‘30%’ 지분에 해당하는 자산규모가 현재 약 100조원에서 얼마까지 더 늘어날지는 알 수 없다.

◆ ‘경영권 세습’ 마무리…‘지분’ 확보, 배당’만 남았다

지난 7월 블룸버그가 집계한 전 세계 억만장자 지수에 따르면 이건희 회장의 재산 가치는 185억달러, 약 21조3600억원에 달해 45위를 기록했다. 이 회장의 재산은 주가 상승으로 올 들어 43억 8000만 달러, 30.9%가 증가했다.

이재용 부회장의 재산 가치는 72억달러, 약 8조3100억원으로 199위를 기록했다. 올 들어 15억달러, 27.1%가 뛰었다.

이건희 회장의 유고로 이 회장의 주식 재산 21조3600억원을 물려받으려면 50%인 10조6800억원을 상속세로 내야 한다. 생전에 재산을 물려주려고 해도 50%의 증여세를 내야한다.

이재용 부회장이 상속세나 증여세를 현금으로 낼 여력이 있으면 주식을 팔지 않고 지분을 상속, 또는 증여받아 경영권을 세습할 수 있다.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전자의 배당을 갑작스럽게 크게 늘리며 주주환원 정책을 펴는 이유가 상속세나 증여세를 마련하기 위한 현금 확보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있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재계 관계자는 “이건희 회장이 2020년까지 살아 있어야 이 회장이 받는 현금 배당을 통해 상속세 재원을 마련할 수 있고 삼성의 경영권 확보를 위한 안정적인 지분율도 확보할 수 있다”며 "세간에 떠도는 사망설이 사실이라고 해도 삼성 측은 이를 부인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삼성의 경영권 세습 시나리오는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으로 정점을 찍었다.

제일모직 23.2%를 보유했던 이재용 부회장은 두 회사의 합병을 통해 삼성물산 지분 16.5%를 보유한 최대 주주가 되면서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 4.25%를 우호 지분으로 확보했다.

다음 순서로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을 각각 지주회사로 만들어 금산분리 후 지주회사를 합칠 것으로 거론됐지만 삼성은 지난 4월 지주회사 전환은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으로 경영권 승계 작업이 사실상 마무리됐다고 판단한 것이다.

법원은 이재용부회장에 대한 1심 판결에서 “대주주 일가의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권 행사에 있어서, 금산분리로 인해 의결권 제한을 받고 있는 삼성생명 지분을 제외하면 삼성물산이 보유한 4.06%는 매우 중요한 지분으로서 지배구조 관점에서 필수적인데 합병을 통해 이재용 등 대주주의 삼성전자를 포함한 그룹에 대한 영업 지배력이 강화되고 현행 규제환경 하에서 최선의 지배구조를 형성해 상속을 제외한 경영 승계는 사실상 마무리됐다”고 평가했다.

2008년 4월 4일 오후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삼성그룹 비자금 의혹 등을 수사 중인 조준웅 특별검사팀에서 피의자신분으로 조사를 받기위해 사무실로 들어서고 있다.<사진=뉴시스>

◆ 취약한 지분, 세금이 아까운 父子…편법 경영권 승계

삼성이 위험을 무릅쓰고 각종 편법을 구사하며 가신(家臣)들이 득세하는 근저에는 황태자 이재용 부회장을 위한 ‘승계(承繼)’ 작업이 있다.

총수 일가의 지분이 삼성그룹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취약하다 보니 삼성의 시계는 모두 경영권 승계에 맞춰져 있다.

삼성의 경영권 승계는 1995년 이건희 회장이 이재용 부회장에게 증여한 61억원의 종잣돈이 시작이다. 삼성의 대규모 비리도 이즈음부터 저질러졌다.

이건희, 이재용 부자는 상속 과정에서 마땅히 내야할 세금을 아까워하며 각종 불법과 편법을 택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증여세를 납부하고 남은 44억원으로 비상장 계열사의 주식을 헐값에 매입해 계열사를 상장시킨뒤 고가에 팔며 거액의 돈을 챙겼다. 삼성에버랜드, 삼성SDS, 에스원, 삼성엔지니어링 등이 동원됐다.

1996년 삼성에버랜드(현 삼성물산)는 재무구조가 튼튼한데도 전환사채(CB)를 헐값에 발행했다. 이 부회장이 약 100억원을 들여 삼성에버랜드의 주식 32%를 취득하며 단숨에 최대 주주로 올라섰다.

에버랜드 CB 헐값 발행은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과정이었다. 당시 에버랜드는 1주당 23만원에 이르기도 했지만 이 부회장은 주당 7700원에 사들였다. 970억원의 시세 차익을 얻은 것은 물론 삼성지배구조의 정점인 삼성에버랜드의 최대주주로 올라서며 삼성 전체를 지배할 수 있게 됐다.

삼성물산, 중앙일보 등 삼성에버랜드의 계열사 주주들은 전환사채 배정을 포기하고 이재용, 이부진, 이서현 남매가 전부를 인수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인수 논란이 일었고. 당시 배임이 아니냐는 형사재판도 있었다. 하지만 대법원에서는 무죄 판결을 내렸다.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도 문제가 됐다.

1996년 에버랜드 CB헐값 발행에 이어 1999년 삼성SDS BW(신주인수권사채) 헐값 발행을 거치며 이재용 부회장의 재산은 거침없이 늘어났다.

삼성 SDS 상장을 통해서 이재용, 이부진, 이서현 삼남매는 189억원의 투자금을 4조3300억원대까지 불렸다.

에버랜드와 SDS 상장 뒤에는 삼성계열사의 건물 관리 및 급식 제공, 삼성전자 등 계열사로 받은 일감 등 ‘일감 몰아주기’가 한몫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또 1998년엔 비상자사인 삼성생명의 주식을 주당 9900원씩 344만주를 매입해 지분을 2%에서 20%로 늘렸다. 삼성생명은 2011년 상장했다. 삼성생명은 200조원이 넘는 자산으로 삼성전자의 지분을 사들여 삼성전자의 최대 주주가 됐다.

이재용 부회장은 61억원의 종잣돈으로 매출 300조원이 넘는 삼성그룹의 지배권을 갖게 됐지만 그 과정에서 낸 세금은 증여세 16억원에 불과했다.

◆ 무리한 승계…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2014년 5월 이건희 회장의 갑작스런 와병으로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는 속도를 내게 된다.

에버랜드는 2015년 제일모직을 인수해 회사명도 제일모직으로 바꿨다. 이후 이재용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무리한 합병을 시도했다.

제일모직은 삼성전자의 주식 7.2%를, 삼성물산 주식은 4.1%를 갖고 있었지만 합병비율은 3대1이었다.

삼성물산의 자산이 제일모직의 2배나 되는데도 삼성물산 주식 3주와 제일모직 1주를 교환하는 것으로 합병비율이 결정되며 ‘편법 상속’ 논란이 다시 일었다.

삼성물산의 최대 주주인 국민연금은 합병으로 3000억원 이상의 손실을 본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찬성표를 던지며 합병을 성사시켰다.

특검은 이재용 부회장이 최순실의 딸 정유라에게 승마를 지원하고 최순실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문형표 국민연금 이사장, 홍완선 기금운용본부장에게 지시해 국민연금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에 관여하며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도왔다고 봤다.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이 10월 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최순실 뇌물 사건' 항소심 2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사진=뉴시스>

◆ 비서실→구조본→전략기획실→미전실로 이어온 가신(家臣)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공직 발탁 전 “삼성이 자신의 성공에 너무 도취돼서 자신의 과거의 방식을 고집하다가 결국엔 미래전략실의 가신들이 이 부회장을 감옥에 넣은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그룹 계열회사들의 이사회, 전문경영인, 그리고 콘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은 총수일가의 이익이 걸린 사안 앞에서 전혀 독립적이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지배구조를 갖고 있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특히 1959년 이병철 삼성 창업주 시절 시작된 회장 비서실은 구조조정본부, 전략기획실, 미래전략실로 이어져오며 삼성의 최고실세 조직으로 군림하고 있다.

2008년 삼성 비자금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는 2009년 펴낸 ‘삼성을 생각한다’에서 구조본 재무팀의 과장이 계열사 사장들에게 지시를 할 만큼 구조조정본부가 막강한 권한을 휘둘렀다고 기술했다.

또 구조본이 주도적으로 검사들에게 돈을 뿌리고 재판 앞에서 증거를 조작하며 ‘회장을 향한 강력한 충성에 대한 강력한 보상’이라는 체계에 길들여져 비리를 함께 모의했다는 공범자 의식으로 똘똘 뭉쳐 있다고 했다.

삼성의 대규모 비리는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경영권 승계에 맞춰 이뤄졌다. 이재용 부회장이 부친에게 받은 종잣돈 61억원으로 증여세를 내고 남은 돈 약 45억원으로 삼성을 장악하도록 하는 것은 당시 구조본 이학수 부회장과 김인주 사장이 기획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 SDS 신주인수권부사채 저가 배정 사건으로 2009년 이건희 회장과 함께 유죄 판결을 받은 이 회장의 최측근 이학수와 김인주로 대변되는 삼성의 가신은 이재용 부회장 시대에 와선 최지성 부회장과 장충기 사장으로 이어진다. 이들도 이 부회장과 함께 징역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지난 8월 25일 법원은 이재용 부회장에게 징역 5년형의 실형을 선고했다. 이 부회장에게 적용된 뇌물공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특경법)상 ‘횡령’, 특경법상 ‘재산국외도피’, 범죄수익은닉규제및처벌에관한법률위반, 국회에서의증언·감정등에관한법률상 ‘위증’ 5가지 혐의 모두 유죄로 인정됐다.

김진동 부장판사는 판결문에서 "삼성 승계와 관련해 이재용 부회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 사이에 명시적 청탁은 없었지만 묵시적 청탁은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이재용 부회장과 최지성·장충기·박상진·황성수씨 등 삼성전자 전현직 임원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최순실씨에게 총 433억원의 뇌물을 주거나 약속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 판결을 앞두고 삼성공화국의 권력이 고스란히 드러난 장충기 사장의 휴대폰 문자도 공개돼 논란이 됐다. 청와대와 국정원 최고위급 인사들이 정보보고를 하고 검찰과 법원이 청탁을 하는 내용이었다.

국정농단 수사에 참여했던 한 검사는 “삼성공화국의 대통령은 이재용이었고, 비서실장은 장충기였다. 박근혜와 김기춘은 들러리처럼 보였다”라고 했다.

삼성전자 전 고위 임원은 삼성이 가야할 방향을 묻는 질문에 “기업이 지속가능한 경영을 하려면 오너를 보좌하는 참모들이 준법정신과 윤리, 철학 의식이 투철해야 한다”며 가신들의 문제점을 가장 먼저 해결야할 과제로 꼽았다.

경제개혁연대도 “미래전략실은 법적 실체가 없기 때문에 권한과 책임이 괴리되고, 그 결과 총수일가 및 가신들의 사익을 위해 무리수 내지 불법행위까지 서슴지 않는 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며 “무엇보다 삼성그룹의 ‘이사회 순혈주의’를 버려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해체된 미래전략실은 전략기획실이 미래전략실로 이름을 바꾼 것처럼 어떤 형태로든 조만간 다시 기능을 가질 전망이다.

실제로 10월 13일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의 용퇴 발표 시점을 전후로 세대교체 작업이 속도를 내는 것과 함께 미래전략실 출신 임원들도 속속 복귀하고 있다.

장충기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차장이 8월 25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관련 삼성 뇌물공여 혐의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은 뒤 구치소로 이동하는 호송차량으로 향하고 있다.<사진=뉴시스>

◆ 약속 지키지 않은 이건희…이재용은?

지난해 12월 최순실 국정농단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이재용 부회장은 "제 책임이 있으면 물러나겠다. 우수한 경영자에게 언제든 다 (경영권을) 넘길 수 있다. 국민들에게 인정받는 기업이 되겠다"고 했다. 미래전략실의 해체도 약속했다.

이재용 부회장의 이같은 모습은 9년 전 아버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모습을 오버랩시켰다.

2008년 4월, 삼성 비자금 사건이 터지자 이건희 회장은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자신의 퇴진과 함께 오너 일가의 비자금 조성 창구라는 비판에 휩싸인 전략기획실 해체를 발표했다. 4조5000억 규모의 차명계좌의 실명 전환과 누락된 세금을 납부하겠다고도 약속했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은 2009년 12월 사면복권을 받아 다시 경영에 복귀했다. 그룹 전략기획실도 미래전략실로 간판을 바꿔 부활했다.

“믿음과 희망을 주는 기업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대국민 사과와 달리 약속했던 4조5000억원 규모의 차명계좌의 실명전환과 누락된 세금납부 약속은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이건희 회장은 명의변경을 통해 조 단위로 추정되는 과징금과 세금을 내지 않고 차명 재산 전액을 찾아갔다.

◆ 소비자는 ‘뒷전’…세금 안내고 이윤 추구 골몰

배당과 자사주 소각, 차명 계좌 등으로 오너 일가가 수조원을 챙기는 이면에는 삼성의 스마트폰과 가전제품을 비싼 가격에 구매해주는 소비자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우리나라 경제활동 인구는 약 2684만4000명, 지난해 삼성의 국내 매출액은 14조660억원으로 직장인 1인이 삼성전자 제품을 산 금액은 연간 52만4000원에 달했다.

삼성전자는 3분기에도 매출 62조원, 영업이익 14조5000억원으로 사상 최고 실적을 갈아치울 전망이다. 전년동기대비 각각 29.65%, 178.85% 상승한 수치다. 스마트폰을 담당하는 IM 사업부에서만 3조원의 영업이익을 올릴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소비자들을 위한 혜택에는 인색하다는 지적을 끊임없이 받고 있는데도 개선의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최근 정무위 소속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제조사가 국내 소비자를 차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통사를 거치지 않고 제조사가 직접 판매하는 무약정폰이 통신사 판매 단말기 출고가보다 10% 더 비싸기 때문이다.

가장 최신폰인 갤럭시S8의 경우 삼성전자의 직영 매장인 디지털프라자에선 개통하는 단말기는 109만4500원, 개통하지 않는 단말기는 10%, 10만 9500원 더 비싼 120만4000원에 판매한다.

단말기를 개통하기 위해선 본인 신분증 등이 필요해 선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개통하지 않고 10% 비싸게 구입한다.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박병대 부사장은 이에 대해 이통사는 약정을 통해 수익을 얻지만 약정을 걸 수 없는 제조사·유통사 입장에서는 추가 마진을 붙여 판매할 수밖에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갤럭시S8이 미국 삼성닷컴 가격은 724.99달러, 한화 약 82만원으로 사용하던 스마트폰을 반납하면 300달러(33만9900원)까지 추가 할인을 받을 수 있다.

국내 소비자들이 미국 소비자들보다 갤럭시S8을 약 두배에 달하는 가격을 지불하고 구입하고 있는 것이다.

통신요금 인하방안으로 ‘단말기 완전자급제’가 최근 정치권에서 힘을 얻고 있지만 삼성은 이에 대해서도 반대다.

‘단말기 완전자급제’는 단말기 판매와 이동통신사 서비스 가입을 완전히 분리하는 것으로 소비자는 삼성전자나 LG전자의 온·오프 판매점에서 먼저 단말기를 구입한 후 이를 이통사 대리점으로 가져가 통신서비스에 가입하게 된다. 가격 경쟁으로 단말기 가격 인하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글로벌 스마트폰 매출이 높은 삼성은 ‘단말기 완전자급제’를 찬성하는 LG전자와 달리 국내 단말기 가격 하락이 글로벌 시장에서의 가격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스마트폰 가격을 내려 소비자들의 가계 부담을 덜어 주는 것은 소비자들의 삼성에 대한 반감을 가장 효과적으로 희석시킬 방안으로 기대해 볼 수 있다”며 “다른 어떤 사회공헌 활동보다 파급 효과가 클 것”이라고 지적한다.

삼성의 올해 기부금 비율은 0.15%, 기부금은 1159억6600만원에 그치고 있다.

◆ 이재용, 선택은?

글로벌 1등 기업이 된 삼성전자는 이건희 회장이 삼성을 물려받은 30년 전인 1987년과는 전혀 다른 리더십을 필요로 한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공직 취임 전  이재용 부회장의 리더십에 대해 스웨덴 발렌베리 그룹을 예로 CEO형 총수는 전문 경영인에게 맡기고 각 계열사들에서 이뤄진 결정들을 조정하면서 이해 관계자와 소통하는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조언했다.

경제개혁연대도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그룹에 대한 경영권과 소유권에 대해 과도한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삼성전자 및 삼성그룹의 전문 경영진들은 이재용이라는 소위 '총수'의 복귀를 전제하지 말고 총수 없는 회사 또는 그룹으로서 새로운 지배구조를 정립해 나가야할 것"이라며 "이재용 부회장의 ‘옥중 경영’의 미련도 버려야 한다. 이사회 및 전문경영진들이 전향적인 자세로 새로운 지배구조를 정립해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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