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준식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부장검사가 지난달 9일 액화천연가스(LNG) 저장탱크 건설공사 입찰담합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뉴시스

역대 두번째 규모 과징금…건설사들, 첫 재판서 '혐의 인정' 
'4대강 담합' 쥐꼬리 벌금 전례 비춰 이번도 솜방망이 예상

[위클리오늘=안준영 기자] 액화천연가스(LNG) 저장탱크 공사 입찰과정에서 역대 최대 규모의 담합으로 기소된 대형 건설업체들이 법적 단죄를 앞두고 있다. 대형 국책사업 수주에 뛰어든 건설사들이 4대강 사업에 이어 또다시 '밀실 짬짜미'를 한 사실이 수사 과정에서 확인되면서 담합 처벌 수위에 대한 근본 수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지난 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김상동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건설업계의 공정거래법ㆍ건설산업기본법 위반 사건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건설사 10곳 중 9곳은 혐의를 순순히 인정했다. 공판준비기일은 본격적인 심리에 들어가기에 앞서 쟁점을 정리하는 자리다.

해당 건설사는 대림산업, 한양, 대우건설, GS건설, 현대건설, 경남기업, 한화건설, 삼부토건, 동아건설산업, SK건설 등 10곳이다. 함께 담합에 가담한 삼성물산은 제일모직과의 법인 합병으로 '공소권 없음' 처분을 받았다. 두산중공업과 포스코건설은 '리니언시'(자진신고감면제)를 적용받아 법인은 고발이 면제됐으며 임직원만 기소됐다.

이들은 2005년 5월 ~ 2012년 12월 사이 3조5495억원 규모의 국책사업인 LNG 저장탱크 건설공사 입찰에서 가격을 사전에 협의하는 수법으로 담합한 혐의다. 2001년 최저가낙찰제 도입 이후 적발된 담합범행으로는 최대 규모다.

문제가 된 LNG 저장탱크 건설공사 입찰은 공고 → 사전입찰자격(PQ)심사 → 입찰서ㆍ관계서류 접수 → 입찰금액 적정성 심사 → 낙찰자 결정의 5단계 절차를 거쳤다.

공정위 등에 따르면 이들은 해당 기간 공사 입찰 12건에서 사전에 제비뽑기로 낙찰받는 순서를 정한 뒤 낙찰받을 업체가 나머지 업체의 입찰서류를 예정가보다 높게 '대리 작성'해 탈락시켰다.

가장 낮은 가격을 써낸 업체가 공사를 따내는 최저가낙찰제 방식인 점을 노린 것이다. 높은 전문성을 요구하는 대규모 공사라 소수의 업체만 참가 자격이 주어지는 점을 악용했다. 국가, 자치단체 등 공공 발주기관은 300억원 이상 규모의 공사에 대해선 원칙적으로 최저가낙찰제 방식을 따라야 한다.

건설업계 맏형인 현대건설이 담합을 주도한 것으로 전해졌는데, 적정 가격보다 더 높게 받은 공사비 추정액 수천억 원은 고스란히 국고 손실로 이어졌다.

재판 전 단계로 공정위는 지난해 해당 업체들에 역대 두 번째 규모인 3500억원의 과징금을 물렸고 발주처인 가스공사 또한 2000원대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대림산업, 대우건설, SK건설, GS건설, 현대건설은 지난 2012년과 2014년 4대강 사업 관련 공사 담합 행위가 적발돼 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더한다.

그간 업계는 담합이 어떤 이유에서든 정당화될 수 없지만 대형 국책사업이라는 특수성, 정부가 담합을 유도한 측면 등을 감안해달라는 입장이었다. 담합이 실무 직원, 개인 차원의 일탈 행위인데 이로 인해 회사가 양벌규정으로 처벌받는 것은 부당하다는 논리도 병행했다.

기소된 한 건설사 관계자는 "국가 발주 공사는 속도전으로 임기 내에 준공을 해야하는 사정이 있다"며 "단독 입찰이 안되니 공구를 분할하거나 지역을 나눠 '너는 여기 들어가고 너는 여기 들어가라' 교통정리를 한 것인데 비난 강도가 과하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연루 건설사 관계자는 "특정 공구에 우루루 몰리면 과당경쟁이 된다. 지시가 아닌 서로 협의하는 수준도 당국은 담합이라고 본다"며 "4대강 공사는 정부가 공기 단축하라해서 공사비도 손해봤는데 과징금 폭탄에 손해배상까지 맞게되면서 밑지는 장사가 됐다"고 볼멘소리를 냈다.

하지만 불공정한 관행을 구조적으로 되풀이해온데다 일부 회사의 경우 공사 담합에 관여한 임직원들을 승진시키는 등 사실상 담합을 방조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런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담합 입찰과 처벌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은 적발돼 과징금과 벌금을 받더라도 남는 장사이기 때문이다.

담합 입찰의 경우 대부분 예정가의 90% 이상의 가격에 낙찰된다. 제대로 된 경쟁 입찰일 경우 예정가의 70% 선에서 낙찰되는 경우가 많다. 담합 입찰이 성공하면 정상적인 경쟁 입찰보다 20% 이상 이득을 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4대강 공사 담합에 따르는 과징금이 공사비의 3.55%에 불과한 점을 보면 답이 나오는 계산이다.

◆ 국책사업 단골메뉴 '들러리·짬짜미' 차단위한 특단조치 필요 

행정 제재적 성격인 과징금 이후의 법적 단계에서 솜방망이 처벌이 계속되고 있는 점도 담합을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다. 현행 건설산업기본법 95조 1호에 따르면 부당한 이익을 취득하거나 공정한 가격 결정을 방해할 목적으로 입찰자가 서로 공모하여 미리 조작한 가격으로 입찰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억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

지난 2015년 12월 4대강 담합협의로 기소된 대형건설사 6곳에 대한 상고심에서 개별 건설사들이 대법원으로부터 선고 받은 벌금은 5000만원 ~ 7500만원이었다.

이들이 담합으로 얻은 부당이익이 1조6000억원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껌값’도 이런 껌값이 없다. 법인과 함께 재판에 넘겨진 임원들도 집행유예 혹은 벌금형이 고작이었다.

이번 LNG 탱크 공사 입찰 담합 사건도 검찰이 사건 연루자들을 모두 불구속기소하면서 '처벌할 조항 이전에 처벌할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불거지기도 있다.

이런 가운데 건설사가 공공공사 입찰 담합이 3차례 적발됐을 때 퇴출되는 '삼진아웃제'의 적용 기간을 3배로 강화하는 내용으로 22일부터 시행에 들어가는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안이 실효성을 거둘수 있을지 주목된다.

개정안의 핵심은 '삼진아웃제' 시한을 3년에서 9년으로 늘린 것. 예전에는 3년 내 3번의 입찰담합이 적발돼 과징금 처분을 받으면 건설업 등록이 취소됐지만 이제는 기간을 9년으로 확장해 적용 확률이 높아졌다.

시민단체들은 한걸음 더나아가 적용기간을 아예 없애 '음주운전 삼진아웃제'처럼 담합이 3회 적발되면 무조건 퇴출시켜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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