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보복후 유커 57% 급감…관광업계 직격탄
내국인 해외여행 반작용…동남아 관광객도 '뚝'
9월 동남아인 무비자 시행 "실효없는 뻥튀기 대책"
"대만·일본 대응 타산지석"…"불법체류·비자는 별개"

[위클리오늘=안준영 기자] 중국 정부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보복조치로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의 한국 방문 절벽이 지속되는 가운데 중국 수요를 메울 대안으로 지목됐던 동남아시아 여행객마저 최근 감소하는 분위기다.

정부가 동남아 관광객의 무비자 체류를 일부 허용하는 등 중국인에 치우친 관광시장을 다변화하는 방안을 내놨지만 국내 입국 문턱을 낮추는 '맞춤형 비자 서비스 체제'로 대표되는 근본처방없이는 언감생심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미 무비자로 90일간 체류가 가능한 태국의 단체관광 실태에서 보듯 불법체류자 양산 우려도 있는 만큼 정책을 실행할 솔로몬의 해법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사드 보복이 본격화된 올 3월~5월까지 우리나라를 방문한 중국인은 84만1952명으로 작년 동기(198만9833명)대비 57.7% 급감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유커는 국내 관광업계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큰손이었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 방문객은 모두 1720만명이었는데 거의 절반인 46.8%가 중국인(806만명)이었다.

우리나라는 글로벌 관광 강대국과 달리 외국인 유치에서 중국 편식 현장이 두드러진다.

지난해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 관광객을 국가별로 보면 중국 46.8%, 일본 13.3%, 미국 5.0%로 상위 3개국 비중이 65%를 상회한다. 외국인 관광객 3명 중 2명이 중국, 일본, 미국인 중 하나인 셈이다.

반면 태국은 상위 3개국 의존도가 42.2%에 불과했고 이탈리아와 프랑스 등 유럽 국가도 40% 내외였다. 이들 국가는 최상위 국가의 관광객 비중이 20%대를 넘지 않아 중국에 절반가량을 의존하는 우리나라와 큰 차이를 보였다.

사드 보복에 따른 관광 위기를 체질개선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 것도 이런 맥락이다. 중국에 편중된 '해바라기식 관광유치 정책'에서 탈피해 관광시장을 일본과 대만, 홍콩 등 신흥시장으로 다변화하자는 취지다.

동남아는 중국, 일본과 마찬가지로 한류 영향권에 속해있는데다 심심찮게 외교 문제가 불거지는 두 나라와 달리 우리와 갈등 요인도 없다.

여행 가격 비교사이트인 스카이스캐너에 따르면 지난해 인도네시아 여행객의 항공권 검색량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늘어난 곳은 서울이었다.

필리핀 여행객의 검색량이 가장 많이 증가한 지역도 제주가 1위, 서울이 3위를 차지했다. 서울은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여행객들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검색한 여행지 2위와 4위로도 이름을 올렸다.

잠재적인 관광 구매력이 크다는 점도 매력적인 요인이다.

인도네시아(약 2억5800만명·세계 인구 5위), 필리핀(약 1억명·12위), 베트남(약 9500만명·15위) 등은 인구 대국이다. 미국 조사‧정보 회사 닐슨리서치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의 중산층 인구가 2012년 1억9000만 명에서 2020년 4억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추정했다.

그런데 올 들어 성장세를 이어가던 동남아·중동발 한국 방문객이 지난 5월 전년 동월 대비 15% 이상 하락하면서 관광업계는 다시 근본적인 고민에 빠졌다.
 
◇9월부터 '제주 최종 목적'시 동남아 관광객 무비자

동남아·중동 무슬림국가에서 시작된 라마단(5월 27일~6월 25일)으로 인해 무슬림들이 해외여행을 자제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중국 크루즈선의 국내 입항이 차단되면서 매월 수만 명씩 한국으로 들어오던 동남아 국적 크루즈 승무원의 발길이 끊긴 점 또한 급격한 하락세의 요인이다.
 
특히 5월 한 달간 한국인들의 동남아 여행이 늘어난 점도 동남아 관광객들의 한국 여행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동남아~한국 간 항공 좌석 수요가 급증하면서 가격이 올라 한국을 방문하려는 동남아 여행객에게 부담을 줬기 때문이다.

여행업계 관계자는 "한국인이 서둘러 저렴한 요금의 좌석을 선점한 탓에 동남아 관광객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고가의 항공료를 지불해야만 한국에 올 수 있었던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동남아·중동 지역 관광객의 한국 여행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한국 관광 비자 문턱이라는 근본적인 족쇄가 발목을 잡는다.

정부는 9월이후 제주도를 방문하기 위해 인천과 김해공항 등에서 환승하는 인도네시아, 베트남, 필리핀 단체관광객들은 비자없이 5일간 제주도 이외 지역에서도 체류할 수 있도록 했다.

제주를 최종 목적지로 하는 동남아 단체관광객들이 인천이나 김해, 대구 국제공항에서 환승하는 경우 환승지역인 내륙 도시에도 5일에 한해 무비자 입국을 허용하기로 했다.  그동안 중국 단체관광객만이 무비자 혜택을 받았으나 정부가 유커 급감 이후 대상을 확대했다

제주 외 내륙지역에도 무비자 입국이 허용되면 동남아 단체관광객이 비자없이 서울이나 부산 등 내륙지역에서 5일, 제주에서 10일 체류가 가능해져 관광상품 일정이 다양해지고 체류 기간도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이는 비싼 돈을 지불하고 패키지 여행상품을 신청한 단체여행객에 국한된다. 자유여행을 원하는 개별 관광객들은 혜택에서 원천 제외된다.

현재 대만,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태국 등의 국적을 가진 경우 90일간 한국 무비자 입국이 가능하다. 반면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미얀마 등의 국적자는 관광비자나 취업비자가 있어야 국내에 입국할 수 있다.

제출 서류가 복잡하고 통과 절차가 까다로운 동남아 주요 국가의 한국 비자 발급 과정을 간소화하지 않는 한 지원 대책은 실효성이 의문시되는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관광업계 "그림의 떡…제주 국한 말고 전국 확대를"

자유여행으로 한국을 방문해 3주째 서울 강남에 머무르고 있는 필리핀 관광객 조안 아로요(가명·여)씨는 요즘 싱숭생숭하다.

드라마에서나 봤던 서울에서 도심 관광도 하고 명동 화장품 쇼핑도 하고 한식도 즐겼지만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귀국 날짜가 다가올수록 마음 한켠이 우울해진다.

조안씨는 59일 체류기한의 단수 관광비자(C-3)로 한국 땅을 밟았다. 단수는 말 그대로 1회용이다. 귀국 후 한국대사관에 다시 비자 신청서를 넣을 계획이지만 통과될지는 미지수다. 이번 관광비자도 재수 끝에 간신히 받아낸 터다.

필리핀에서 대형 농장을 소유한 그는 사업가로 분류돼 한국 관광비자를 받으려면 최소 7개의 각종 서류를 대사관에 제출해야 한다.

신청서와 여권 사본 등 기본 서류 외에도 △사업자등록증 △사업허가증 △은행잔고증명서 △은행 거래내역서 3개월분 △소득세 납부증명서를 줄줄이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현지 규정상 소매업과 달리 쌀, 사탕수수 등 농작물의 생산자나 딜러는 국가에서 사업허가증을 발급해 주지 않는다. 현금, 부동산 등 재산이 많더라도 비자 취득 여부가 전적으로 한국대사관 담당 영사의 재량에 달려있는 셈이다.

그는 "스위스, 독일 등 유럽 OECD 국가를 관광하고 왔다는 증빙 자료(비자 사본)를 제시했는데도 한국 관광비자 신청 첫 회엔 퇴짜를 맞았다"면서 "한국과 경제수준이 비슷한 홍콩은 필리핀 사람이면 누구나 14일간 무비자로 다녀올 수 있다"고 고개를 저었다.

지난해 중국이 차이잉원 총통에 대한 압박으로 관광금지령 조치를 발동했을 때 대만은 동남아 비자 면제 등을 통해 새 시장을 개척했다.

이에 힘입어 중국인 관광객은 줄었지만 태국·베트남·필리핀 관광객 등 대만을 찾은 외국인은 1069만명으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2012년 중국과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갈등을 빚은 일본도 중국인 관광객이 30% 이상 급감하자 한국·동남아 등의 여행객을 유치, 돌파구를 마련했다.

또 다른 여행업계 관계자는 "제출서류, 비용, 소요기간 등 문제로 동남아인들이 자국에서 (비자 이전에) 여권을 발급받는 것도 어려워 불법체류자 증가를 지레 겁먹을 필요가 없다"며 "홍콩처럼 비자발급을 쉽게하는 대신 불법체류자의 고용주를 강력 처벌하는 원근법적 대응 방안을 고민할 시점이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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