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세계의명화 '리플리' 7월 1일(토) 밤 10시 55분

▲ '리플리' 스틸컷.

[위클리오늘=설현수 기자] 영화 '리플리'(원제: The Talented Mr. Ripley)=감독: 안소니 밍겔라/출연: 맷 데이먼, 주드 로, 기네스 펠트로, 필립 세이모어 호프먼, 케이트 블란쳇, 잭 데이븐포트/제작: 1999년 미국/러닝타임: 139분/나이등급: 19세.

# '리플리' 줄거리

피아노 조율사이자 호텔의 심부름꾼으로 일하는 톰 리플리(맷 데이먼)는 거짓말과 흉내내기에 비상한 재주가 있다. 

톰은 어느 파티에서 피아니스트인 양 행세하다 부호 그린리프를 알게 된다. 프린스턴 대학의 재킷을 입고 있던 바람에 본의 아니게 아이비리그 출신이라 오해 받은 톰은 그린리프의 착각을 바로잡지 않는다. 엉겁결에 유럽에서 놀고 먹는 그린리프의 아들과 프린스턴 대학 동문이라고까지 그린리프를 속이게 된다. 

그린리프는 착실해 보이는 톰에게 여비를 제공할 테니 아들을 데려와 달라고 부탁한다. 톰은 그린리프의 아들 디키(주드 로)에 관해 면밀히 조사한 뒤 미국을 떠나 이탈리아로 가 디키를 찾는다. 

이탈리아에 도착하자마자 만난 메레디스(케이트 블란쳇)에게 톰은 자신을 디키라고 소개한다. 사소하게 시작한 거짓말은 점점 부피를 늘리며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얼마 안 있어 해변에서 휴식하는 디키와 그의 약혼녀 마지(기네스 펠트로)를 찾아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말을 건 톰은 디키의 취향을 공략해 디키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디키와 친하게 지내며 상류사회의 향락을 함께 누리게 된 톰은 돈, 유흥, 여자, 자유로움 등 어느덧 디키가 가진 모든 것에 깊이 매료된다. 

디키의 또 다른 친구 프레디(필립 세이모어 호프먼)는 샌님 같은 톰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과감한 기분파인 디키는 절묘하게 자신의 취향을 맞추는 톰과 쉽게 가까워졌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위화감을 느껴 톰을 멀리하고, 자신을 멸시하며 거리를 두려는 디키를 설득하려던 톰은 홧김에 디키를 살해한다. 

하필 디키가 톰과 둘이서만 보트에 올라있던 때라 아무도 톰의 살인 행위를 보지 못한다. 톰은 디키 행세를 하며 그의 주변을 정리하고, 차차 디키의 모든 것은 톰의 소유가 된다. 

평소 변덕이 심했던 디키라 한동안 사람들도 그의 행방불명에 개의치 않았으나 마지만큼은 끊임없이 톰을 의심한다. 완전범죄를 위한 거짓말은 더 큰 거짓말을 낳는다.
 
# '리플리' 주제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동명 소설 '리플리'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1960년에 르네 클레망 감독이 '태양은 가득히'란 제목으로 영화화한 바도 있다. '리플리'는 원작과도, '태양은 가득히'와도 사뭇 다른 무드의 연출과 캐릭터 해석으로 반향을 일으켰다. 

영화화되며 원작의 서늘한 긴장감은 주된 배경인 로마를 빼닮아 축축하고 드라마틱한 무드로 바뀌었다. 

원작에서의 톰 리플리는 사실상 사이코패스에 가까운 인물이다. 분명한 목적이 있는 범죄를 저지르는 동안 조금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고상하고 탐미적인 취향과 교양을 갖췄으며 치밀한 완벽주의자다. 

영화 '리플리'에서의 톰 리플리는 심정적으로 보다 연약한 청년으로 묘사된다. 맷 데이먼이 연기한 톰은 계급 격차에 치어 살던 청년이다. 강렬한 신분 상승 욕구로 인해 동경하던 자를 우발적으로 살해하고, 지속적으로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앞선 거짓말을 덮기 위해 살인을 멈추지 못한다. 

안소니 밍겔라 감독은 맷 데이먼을 톰 리플리 역에 캐스팅하며 선량하고 신뢰할만한 그의 이미지를 역이용한 듯하다. 그의 얼굴을 빌려 톰의 심정적 고뇌를 묘사하며 동정심을 자극하고, 톰의 상황을 상세히 보여주며 관객이 정서적으로 충분히 이입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서스펜스가 넘치던 스릴러는 자연스럽게 인간적인 불안과 죄의식에 관한 드라마로 전환된다. 영화는 톰의 범죄를 안전히 감추는 엔딩을 선택하지만 은폐를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지에 관해선 강한 심정적 혼돈을 남긴다.
 
# '리플리' 감상 포인트

톰이 디키에게 느끼는 경외는 단순히 그의 재력에 대한 부러움만이 아니다. 톰은 때때로 피아노로 몰래 바흐를 연주하고 호텔에서 일하면서도 짬짬이 고객들이 즐기는 오페라를 훔쳐 본다. 나중에 디키 행세를 하며 메레디스와 특등석에서 오페라를 즐기면서도 순수한 감동에 눈물을 흘린다. 

감수성이 풍부하고 연약한 톰이 원했던 것은 디키가 태생적으로 갖고 태어난 귀족적인 태도와 허영의 뉘앙스다. 어떤 기회도 없이 가난하게만 자라온 그는 디키의 물질적, 정신적 풍요를 동경하는 것이다. 

애초에 <리플리>의 톰 역할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연기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그가 하차하면서 맷 데이먼으로 배우가 교체됐다. 아마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톰을 연기했다면 그 모습은 <태양은 가득히>의 알랭 들롱과 같은, 오만한 완벽주의자에 더 가까웠으리란 짐작이다. 

<리플리>에서 강조된 또 한가지는 동성애 코드다. 톰은 디키를 부러워하고 동경하면서 그를 선망한다. 순수한 사랑이라고는 단언할 수 없이 복잡한 감정이 모호하게 엮이지만, 디키의 체취를 몰래 맡거나 함께 씻길 원하는 장면에선 톰이 디키에게 우정과 동경 이상의 감정을 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톰은 그에게 진실된 사랑을 드러내는 피터(잭 데이븐포트)의 호소엔 응답하지 않는다. 감독 안소니 밍겔라의 전작에 비추어 보면 비극이 뒤얽힌 멜로드라마처럼 읽히다가도 결말에 이르면 끝내 이 이야기는 탐욕과 죄의식에 관한 냉엄한 스릴러라는 것을 상기하게 된다.

# '리플리' 감독 안소니 밍겔라

1954년, 이탈리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안소니 밍겔라는 젊은 시절 뮤지션이 되길 꿈꾸며 지역 밴드에서 키보드를 연주했다. 대학에 가선 연극을 공부하며 강사로도 일했으나 그 무렵 그가 쓴 몇 편의 창작극이 호평 받으며 극작가로 진로를 변경했다. 

몇 편의 연극을 무대에 올리고 자연스레 TV와 영화 시나리오에도 손을 댔다. 영국식 코미디 영화 <유령과의 사랑>(1991)으로 장편영화 연출 데뷔를 했으며 이 작품으로 그 해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을 수상했다. 출세작은 마이클 온다체의 동명 소설을 영화로 만든 <잉글리쉬 페이션트>(1996)다. 제2차 세계대전 말미, 폐허 속에서도 사랑을 꽃피우는 연인들의 비극적 운명을 그린다. 

국적과 이념에 앞선 보편적인 사랑을 장대한 스케일로 연출하며 오스카의 주목을 받았다. 제69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비롯, 작품상, 촬영상, 음악상 등 여러 부문을 휩쓴 화제작이었다. 

남북전쟁을 배경 삼은 또 한 편의 장엄한 멜로드라마 <콜드 마운틴>(2003)은 <리플리>를 만든 뒤 연출한 작품이다. <리플리>에서도 짐작되듯 안소니 밍겔라는 오페라에도 깊은 관심을 두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푸치니의 <나비 부인> 등을 연출했고, 수 편의 오페라 대본을 쓰기도 했다. 

<마이클 클레이튼>(2007), <뉴욕 아이 러브 유>(2008),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2008)의 제작에도 참여했다. 2008년, 54세의 젊은 나이에 편도선 종양 제거 수술 뒤 과다 출혈로 사망했다.

ebs 세계의명화 '리플리' 7월 1일(토) 밤 10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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